[IT 칼럼]또 하나의 경쟁력 ‘아빠가 있는 풍경’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일대, 전 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기업들이 집단 입주해 있는 베이 에어리어는 걱정할 게 별로 없는 곳이다. 한국의 봄·가을 날씨와 유사한 지중해성 기후가 연중 유지되고,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국적·인종·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 뉴욕과 견줄 만한 집값과 가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지진을 빼면 이 지역은 진정 살기 좋은 곳이다.

베이 에어리어 주변에는 자연이 아름다운 곳도 매우 많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주인공 시저가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는 장면의 배경인 미어우드 공원, 깎아지른 절벽과 해안 도로로 유명한 하프문 베이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조금만 더 멀리 나가면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타호 호수와 비교하기 어려운 규모의 웅장함을 가진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베이 에어리어에서 가장 부러운 풍경은 대도시의 역동성도 아니고, 자연의 아름다움도 아니다. 아빠가 있는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정시에 퇴근해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학교에서 차에 태우고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주말이면 공원에는 아빠와 축구, 야구, 미식축구 등을 하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엄마는 어디 갔길래 저렇게 아빠들만 돌아다니나 싶을 정도다. 이곳의 아빠들은 한국에서처럼 일만 하고 살지는 않는다. 자기 전문성을 갖고 커리어를 추구한다는 게 꼭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사실 서울도 가진 것, 보여줄 것이 많은 도시다. 병원 갈 엄두가 안 나는 미국에 비해서 한국 의료 시스템은 저렴하고 훌륭하다. 한국의 공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공립교육 시스템이 무너진 미국보다는 낫다. 배차 간격이 보통 30분이고, 그마저도 수시로 늦는 베이 에어리어의 대중교통 여건에 비교하자면 2분마다 전철이 오는 한국의 수도권 대중교통 여건은 천국이다.

2014년 12월 25일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서울 강남구 양재천변에 설치된 얼음썰매장에서 얼음을 지치며 휴일을 즐기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서울에서 가장 아쉬운 풍경은 아빠와 아이가 있는 풍경이다. 매일 야근으로 늦게 오는 남편 때문에 아내의 불만은 쌓여 가고, 주말이면 그 불만이 사소한 의견차로 폭발해서 몇 주간 후유증으로 이어지는 게 서울의 일상이다. 피곤한 남편은 불행한 아내를, 불행한 아내는 불안한 가정을 양산하고 있다. 예로부터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가정이 평안하지 않은데 어떻게 개인이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가정은 국가나 회사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가치다. 부모와 자식 간에 원활한 소통이 있을 리 만무하다. 반대로 개인주의가 팽배하다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 가족적이다. 미국인들의 개인주의란 개인의 삶의 행복은 자신이 정의하는 것이고, 그건 국가든 회사든 임의로 간섭할 수 없다는 걸 말한다. 다소 단조롭고 외로운 미국인의 삶에서 행복의 중심에는 보통 가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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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하이테크 산업을 이끄는 베이 에어리어를 만들고 움직이는 것도 사람이다. 때문에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베이 에어리어 기업들의 조직문화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삼성전자의 사업장도 구글 캠퍼스와 흡사한 부분이 많다. 네이버의 그린 팩토리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우버 본사나 기업 내부를 꾸며놓은 건 비슷하다. 그러나 그런 외형을 떠나서, 실제 삶으로 들어가면 베이 에어리어 엔지니어의 삶과 수원, 분당, 판교 등에서 생활하는 엔지니어의 삶은 많이 다르다. 아빠가 있는 풍경이 사실 베이 에어리어의 숨겨진 경쟁력 중 하나다. 일과 삶의 균형, 아빠가 있는 풍경은 가족만 행복한 풍경이 아니다. 더 나은 기업과 산업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조건이다.

<김재연 대학사용법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