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8월에 바뀌는 우편번호

‘하덕교 다리 북편 미쳐 서종으로 가다가 좌편 첫 골 들어 좌편 둘째 집’ 대한제국 시대 판윤댁으로 배달된 우편물에 적힌 주소다.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주소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시절이니 우편물을 보내려면 달리 적을 도리가 없었겠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어디 어디, 어느 마을, 누구네 집’ 식의 주소로는 더 이상 우편물을 제때에 배달할 수 없게 되었다. 체계화된 행정구역, 즉 주소 체계가 필요했다. 이때 우편물 수신인의 정보 일부분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 우편번호다.

우편번호의 기원은 독일이 각 지역마다 번호를 매겨 우표에 사용한 185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제대로 형태를 갖춘 건 1959년 10월 영국의 우편번호부터다. 우편번호를 도입하자 우편물 구분작업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제2의 우편 탄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에야 우편번호를 도입했다. 산업화와 함께 하루가 다르게 폭증하는 우편물을 주먹구구 우편 체계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6200만통이던 보통우편물은 1952년 7700만통, 1960년에 1억5700만통으로 늘어났다. 1955년 국민 1인당 우편 이용량도 3.8통에서 1960년 6.7통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게다가 우체국의 일면일국(一面一局) 시대가 열리고 1968년 4월부터는 매일 및 당일배달제가 가능해지자 우편물은 봇물처럼 쏟아졌다. 집배원들은 그 많은 우편물의 주소를 일일이 읽고 배송지역을 구분해야 했다. 체신부는 지방체신청의 확대와 함께 우편번호 도입을 서둘렀다. 1966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1970년 7월 1일 마침내 전국적으로 우편번호제를 실시했다.

최초의 우편번호는 5단계 아라비아 숫자를 채택하였다. 첫 자리는 시·도, 둘째 자리는 대중계국(大中繼局), 셋째 자리는 소중계국(小中繼局), 넷째와 다섯째는 집배국의 고유번호를 표시하는 식이었다. 재미있는 건 당시만 해도 헌법상 대한민국 전역을 부여 대상으로 하여 북한 지역에도 우편번호를 부여한 점이다. 우편번호가 도입되기 전에는 시간당 1500통에 머물던 우편물 구분이 도입 후에는 3000통으로 늘었다. 우편물 구분의 혁명이라 일컬을 만했다. 우편물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1988년 2월 6자리 우편번호 체계로 바뀌는 등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을미년 새해 중요한 우정사업 가운데 하나도 우편번호 변경이다. 새 우편번호는 8월 1일부터 시행되는 국가기초구역 체계에 맞춰 도입된다. 국가기초구역이란 도로명 주소를 기반으로 전 국토를 읍·면·동의 면적보다 잘게 썰어서 경계를 정하고 거기다 번호를 부여해 소방, 통계, 우편 등 각종 구역의 기본단위로 활용하는 제도다. 이 번호를 모든 공공기관이 공통으로 사용하게 되는데 시너지 효과가 주목된다. 특히 기초단위가 하천, 철도, 대로 등 객관적인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업무의 효율화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우편번호는 읍·면·동 및 집배원별 담당구역을 나타내는 6자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새 우편번호 체계는 5자리다. 앞의 세 자리는 시·군·구를 나타내고 뒤 두 자리는 일련번호인데 모두 3만4000여개가 부여된다. <그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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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번호 변경은 단순히 번호의 숫자를 줄이고 늘리는 게 아니다. 국민들의 몸에 밴 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초기에 이용자들의 불편이 뒤따를 수 있다. 우본은 새 우편제도의 빠른 정착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세대에 안내문을 보내는 등 다양한 채널로 홍보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앞서 우편물을 많이 발송하는 일반 고객과 기업들을 위해 새 우편번호 DB 및 전환 소프트웨어도 제공하고 있다. 김준호 우본 본부장은 “새 우편번호가 시행되면 지금보다 더욱 빠르고 정확한 우편물 배달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와 정확도뿐만 아니라 새 우편번호로 오가는 우편물에는 양처럼 순한 말과 선한 뜻이 더욱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

<장정현 경향신문 콘텐츠에디터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