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돈 위에 세워진 계급의식

을미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면 우리를 괴롭게 했던 묵고 헌것들이 물러가고 좋고 새로운 것만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 충만하다. 지난해보다 나은 살림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술술 풀리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변한 게 없음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처럼 되지 않음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환경과 시스템이 그대로거나, 지난해보다 더 나빠졌으니 세상이 좋게 흘러갈 이유가 없다. 그리하여 올해는 작년보다 더 비관적일 것임을 짐작해본다. 필자를 비관적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겠다. 실재는 바람과 다르니 그저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요즘 뉴스는 매일, 매주 갑을관계, 갑질 논쟁으로 한창이다. 처음엔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사람 관계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굉장히 생경하였으나, 이제는 국민 대부분이 이 신조어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나의 갑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은 호들갑스럽게 우르르 몰려다니고, 대부분이 을의 입장에 있는 국민들의 여론은 때마다 들끓는다. 한 달여 국민의 가장 큰 관심에 있던 청와대 비선라인 의혹은 점점 그 비중이 줄어들며, 관심이 사그라지고 국민들은 그보다 더 자극적인 이야기에 울분을 토해낸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에 이어 며칠 전에는 백화점 주차요원을 무릎 꿇리고 혼을 내는 모녀가 이슈가 됐고, 또 대형마트에서 쓰던 휴대폰을 바꿔주지 않는다며 직원을 폭행하고 행패를 부리는 아주머니까지 등장했다. 갑질 논쟁의 당사자들은 서비스업종 종사자가 무슨 자기 종이라도 되는 듯,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폭언은 물론이고 폭행도 서슴지 않는다. 땅콩 회항 사건에서 국민들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낀 것은 조현아씨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을 우리들만 알게 된 것이다. 자기는 잘못한 게 없으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화가 났을 것이다. 뒤늦게 우리만 알아버린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 꽤 많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인식이 계급의식에 근거하고 있으니 우리들은 당황스러운 것이다. 평등하다고 느꼈던 사회에 계급의식이 팽배했음을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 충격이 큰 이유다. 내용이 어떠하건, 사과를 받겠다고 무릎을 꿇리는 것은 단지 무지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이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상식을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린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돈을 쫓는 사람은 역사도 팔고 나라도 팔고 양심도 팔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의 천박함을 알고 있었다. 허나 문제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 앞에서 이루어지는 신분의 상승을 꿈꾼다는 것이다. 실은 우린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다 알면서 모른 척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아주 일찍이 돈으로 만들어진 계급을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돈만 있으면 계급적 우위를 점한다는 상식이 돈 많은 사람들에게,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암묵적으로 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돈으로 차지한 신분에 우리가 너무 관대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지금의 논쟁은 그저 상대적 울분과 분통을 몰아넣기 좋은 먹잇감 같아서 아쉬움이 크다. 이런 논쟁에서 더욱 근본적인 사회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문제의식의 관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그저 중요한 사안을 가리기 위한 자극적인 메이드 이슈 같다. 허무함이 큰 이유다.

<소설가>

백가흠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