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국제시장-전투식량 ‘허쉬초콜릿’의 달콤쌉쌀한 추억

부산 도심에는 산이 없다. 집과 아파트가 산중턱을 병풍 두르듯 둘러버린 탓이다. 잘린 산허리로는 도로가 지난다. 몰려드는 피난민들은 그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을 먹여 살린 곳이 국제시장이다. 부산항을 통해 들어온 온갖 군수물자들은 국제시장을 거쳐 전국으로 유통됐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6·25전쟁 이후 이를 악물고 살아야 했던 이 시대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길은 오롯이 한국 현대사가 됐다. 6·25전쟁 때 흥남철수부터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찾기까지 굵직한 한국 현대사를 가족사로 촘촘하게 묶었다. 덕수(황정민 분)는 흥남철수 때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는다. 남한으로 피란 온 덕수는 어린 가장이 된다. 마도로스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남동생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독일 광부로 떠난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온 영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행복은 잠시다. 여동생의 결혼자금과 국제시장 상점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상사 직원으로 전쟁 중인 베트남으로 떠난다.

덕수의 기억을 관통하는 먹거리가 있다. ‘허쉬초콜릿’이다. 부산으로 피란 와 구두닦이를 하던 덕수에게 미군이 던져주던 먹거리가, 베트남에서 몰매를 맞는 한 아이를 구해주고는 덕수가 건네주는 먹거리가 ‘허쉬초콜릿’이다.

왜 하필이면 허쉬초콜릿일까. 허쉬초콜릿은 6·25 당시 미군의 전투식량이었다. 허쉬초코릿이 군납용 식량이 된 것은 1937년 2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디(D)레이션’이라 불린 허쉬초콜릿은 낙하산으로 투하되는 기본 품목 중 하나였다. 군납용 초콜릿은 열대나 고온다습한 기후에도 쉽게 녹지 않으면서 높은 칼로리를 지니고 휴대가 간편해야 했다. 맛은 별로 없었다. 너무 맛있으면 병사들이 미리 먹어치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삶은 감자보다는 맛이 더 좋을 것’이 미군이 원한 맛의 기준이었다. 허쉬사는 2차대전 때 약 30억개의 전투식량 초콜릿바를 생산해 전 세계 미군장병들에게 보급했다. 소련에도 공급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이 수세에 몰렸을 때 소련군이 지급한 최후의 식량이 되기도 했다.

허쉬의 전투용 초콜릿은 열대용으로 강화돼 베트남 전쟁에도 사용됐다. 1990년대 이라크 전쟁 때도 사막 고온에서 견디는 사막용 초코릿바를 보급했다. 당연히 미군이 가는 모든 전쟁판에서 허쉬초콜릿은 ‘기브 미 초콜릿’의 대상이 됐다.

허쉬초콜릿은 창업자 밀튼 허쉬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허쉬는 사탕공장에서 일을 배운 뒤 26세이던 1894년 캐러멜 회사를 세워 성공을 거뒀다. 그러다 시카고박람회에서 독일제 초콜릿 기계를 사들인다. 스위스에서 밀크초콜릿 제조법을 얻지 못하자 독자적으로 제조공법을 개발해 초콜릿의 대중화를 이뤄냈다. 허쉬가 돋보이는 것은 사회공헌 때문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고향마을 인근에 근로자를 위한 병원, 학교, 주택, 수영장 등을 잇달아 지었다. 또 아이들을 위해 테마파크까지 건설해 ‘허쉬타운’을 조성했다. 지금은 주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

그는 고아들을 위한 학교도 지었다. 아내가 죽은 이후에는 보유한 주식을 모두 학교에 기부했다. 그가 죽었을 때 그 수중에 있던 재산은 2만 달러(2000만원)도 안 됐다고 한다. 허쉬는 타이타닉호 1등석 표를 끊었다가 부인이 아파 배를 타지 못한 까닭에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허쉬는 윤리경영, 도덕경영의 모범사례로 불린다.

영화 속 경제

허쉬초콜릿은 미군들에게는 전투식량이었지만 전쟁국가의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군것질거리였다. 자신이 만든 초콜릿이 전쟁의 쓰라린 고통마저 잊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 됐다는 것을 허쉬는 알았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