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가슴이 따뜻해지는우표 디자인 수상작

“모든 문명사는 우표로 설명할 수 있다.” 우취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 속에는 우취인들의 자부심이 배어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우표는 당대의 정치와 문화와 역사를 함축하고 있으니 헛말이 아니다. 그뿐인가. 그 안에 음식, 패션, 예술, 디자인, 유행, 스포츠 등 각 나라 각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무늬들을 새기고 있으니 문명사라 할 만하다.

오래된 우표일수록 손톱만한 크기를 무색케 할 만큼 내용은 진지하다. 한 시대의 정치나 경제상황을 비추는 거울이자 창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고 모든 우표가 진지한 건 아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환해지고 감상의 즐거움을 주는 우표도 있다. 피카소, 샤갈, 고흐, 달리, 고갱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담은 이른바 ‘아트 우표’만 그런 게 아니다. 수만~수십만 장이 발행돼 희소성은 떨어지지만 마음이 따뜻해지고 넉넉해지는 우표도 세상에는 많다.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심미적 감동을 주는 우표가 그런 경우다. 최근에는 만화처럼 재미있고 팬시 그림처럼 친근한 우표들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대학생·일반 대상작 ‘너에게 보낸다’와 ‘행복한 미술시간’, 청소년 대상작 ‘행복한 우리학교’와 ‘Rainbow Letter’. | 우정사업본부제공

우표디자인이 디자인의 한 분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은 반세기가 조금 넘는다. “우표는 고상하고 특별하며 인상적으로 그 기능을 수행해야만 하고, 예술적인 관점에서나 형태의 언어라는 점에서 현재에 속한다.” 1950년대 독일 우정청 그래픽아트 자문위원장을 맡았던 에밀 프레토리우스라는 디자이너의 정의가 유명하다. 우표에 디자인 개념이 도입되면서 단순히 우편요금 선납 증지였던 우표가 한 나라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매체로 변신했다.

시대의 문화·예술 흐름과 맥을 같이해온 우표디자인은 개념뿐만 아니라 디자인 주체도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이제 더 이상 전문 디자이너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우표디자인 작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우정사업본부가 1991년부터 열기 시작한 ‘대한민국 우표디자인 공모대전’이 대표적인 예다. 응모 자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문가 빼고 누구나 가능’이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공모전 주제는 ‘편지·우체국과 관련된 시와 노래’ ‘행복한 우리학교’였다. 빠르고 편한 것만 구하는 세상에서 느림과 기다림의 의미를 찾고 친구와의 우정, 나눔과 배려 등 행복한 학교를 상상해보기 위해서다. 모두 2844점이 출품되었는데 32편의 수상작을 포함해 독창적인 디자인과 예술성을 갖춘 작품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학생·일반부문 대상 작품 중 하나인 ‘너에게 보낸다’(오윤정)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집배원 가방에서 쏟아지는 하트로 편지 보내는 마음을 표현했다. 폴폴 날리는 하트가 꽃잎편지 같다. 또 다른 대상작 ‘행복한 미술시간’(김가람)은 아이들이 크레파스를 나눠 쓰면서 나눔·배려의 기쁨을 알아가는 교실 풍경을 담았다. 이런 교실, 생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청소년 부문 대상작 ‘행복한 우리학교’(조슬기)는 둥글둥글한 학생들 얼굴로 학교를 형상화했다. 소박한 그림 한 장이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학교, 그래서 웃음이 가득한 교정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대상작 ‘Rainbow Letter’(김다인)는 편지를 주고받는 마음을 하트에 실어 표현했다. 콧노래를 부르는 그림 속 주인공 얼굴에서 설렘과 기쁨이 뚝뚝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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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과 금상 작품은 내년에 우표로 발행된다. 전문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비하면 다소 투박하고 세련미가 떨어지지만 볼수록 정겹다. 우표디자인 수상작들을 보면서 미친 듯이 달려온 한 해를 돌아본다. 새해에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두근거리는 밤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이들 노는 소리가 만세소리보다 백 번은 귀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행복해지는 새해가 왔으면 좋겠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