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서신독점권, 나쁜 규제냐 착한 규제냐

서신독점권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서신은 원칙적으로 국가기관인 우체국에서만 취급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제도다. 여기서 말하는 ‘서신’은 우리가 통상 쓰는 ‘편지’ 개념과 다르다. 우편법은 이렇게 정의한다. ‘서신이란 의사전달을 위하여 특정인이나 특정주소로 송부하는 것으로서 문자. 기호. 부호 또는 그림 등으로 표시한 유형의 문서 또는 전단을 말한다. 다만 신문, 정기간행물, 서적, 상품안내서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은 제외한다.’ 독점 서신의 범위는 무게가 350g이 안 되거나 요금이 기본요금의 10배(현재 3000원) 이하인 서신과 국가기관이나 지자체에서 발송하는 등기취급 우편물이다.

우체국에 서신독점권을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국에 걸쳐, 모든 국민에게, 적정한 요금으로’ 보편적 우편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도서지역 및 산간벽지 등 어느 지역이나 똑같은 요금으로 공평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인력과 시설이 필요하다. 이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여한 것이 서신독점권이다. 이 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다.

오토바이를 몰고 우편물 발송에 나서는 우편집배원. 우편법 개정안이 지난 4일 시행되면서 소규모 서신송달업자들의 신고 의무가 폐지되었다. | 경향신문 자료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제도도 바뀐다. 서신독점권도 예외가 아니다. 한·미 FTA는 우편서비스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의 서신독점권을 완화하도록 요구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서신송달업이다. 2012년 3월 우편법 개정으로 민간인도 구비서류를 갖춰 신고절차를 밟으면 서신을 접수하고 배송할 수 있게 되었다. 중량이 350g을 초과하거나 송달요금이 기본우편요금의 10배를 넘는 서신과 신문, 서적, 정기간행물, 상품안내서를 민간업체가 송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비록 부분적인 개방이긴 해도 서신 송달시장의 국가 독점구조가 깨진 것을 의미한다. 민·관 경쟁시대가 열린 것이다.

서신송달업 규제는 올해 더 완화되었다. 6월에 공포한 우편법 개정안이 이달 4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동안은 서신송달업을 하려면 반드시 지방우정청에 신고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소규모 개인사업자(연매출 4800만원 미만)의 경우 신고할 필요가 없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번 우편법 개정으로 규제를 풀어준 대신 이용자 보호는 강화되었다고 말했다. 법 개정안에 따르면 우편관서와 그 종사자들에게 적용하던 우편물 개봉·훼손죄, 서신비밀 침해죄를 송달업자와 종사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우본은 서비스 개선을 위해 송달업자에게 사업계획 변경이나 시설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송달업자는 우편·우편물·우체국 등 유사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대여해서도 안 된다.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서신의 중량·요금기준을 위반하거나 사업개선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영업소가 폐쇄되거나 최장 6개월까지 영업이 정지된다. 이용자들이 유의할 점도 있다. 송달업체가 난립하는 만큼 자격이 있는 업체인지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미신고 업자에게 송달을 맡겼다가 과태료 폭탄(5000만원 이하)을 맞을 수도 있다.

근대 우편서비스체제가 자리 잡기 이전, 서구 국가들이 도입한 서신독점권은 우편서비스 질보다 국가재정 확충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다 19세기 이후 근대 우편체계가 확립되면서 서비스 개선을 위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근대우정의 정신은 ‘보편적 서비스 제공 의무화’로 발전했다. 그러나 우편사업을 둘러싼 최근의 변화들은 보편적 서비스를 위협하고 있다. 서신에 대한 독점적 지위 축소, 민간시장의 팽창에 따른 수익성 악화, 통신기술 혁신으로 인한 전통적 통신의 급격한 퇴조…. 우정당국으로선 만만한 상황이 아니다.

우정(郵政)이야기 구독

나쁜 규제는 과감하게 푸는 게 옳다. 문제는 모든 규제가 나쁜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서신독점권은 낡은 독점 관행인가, 보편적 서비스를 위한 필요수단인가? 사회·경제적 형평성을 높이는 규제인가 아닌가? 대답은 우편서비스의 규제개혁 잣대를 효율성에 두느냐 공공성에 두느냐에 따라 갈릴 것이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