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이국주의 무명시절 이야기

2010년 5월쯤이었을 겁니다. 당시 MBC 공채 개그맨으로 <개그야>에 출연하고 있던 개그우먼 이국주(28)와 알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올해를 대표하는 개그우먼으로 불릴 정도로 많이 유명해졌지만 당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죠.

5년 정도 전이었지만 활기차던 이국주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도 제게 직접 문자메시지를 보내 즐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연예인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아무리 명함을 줘도 연락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10장을 줬다 치면 2명 정도 연락이 왔다 그러면 준수한 편이었던 겁니다. 그런 이국주가 <무한도전> 200회를 마친 다음날인 5월의 어느 일요일 갑자기 회사를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양손에 빵이 든 봉투를 들고 말입니다. 저는 다들 쉬는 일요일에 웬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게 “저 어제 <무한도전>에 나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국주 | 경향신문

<무한도전>은 그때 지금까지 기획했다가 실패했던 특집을 모아서 하나로 묶어 방송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인도 특집’, ‘여성의 날 특집’ 그리고 한 편의 좀비영화처럼 구성한 ‘28분 후 특집’이 제일 반응이 안 좋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도 여자 좀비 특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때 <무한도전> 멤버들을 위협하는 여자귀신이 있었는데 그게 자기였다는 겁니다.

귀신 분장을 하기 위해 얼굴에 흰 분가루를 덕지덕지 발라 누군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그는 그걸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어디다 자랑하나 밤새 생각하다 방송 다음날 바로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결국 ‘무한도전에 등장하는 여자귀신은 이국주였다’ 이런 내용으로 기사를 썼던 기억도 납니다.

이국주는 그런 개그우먼이었습니다. 성격은 화통하고 뒤끝이 없고 긍정적인 생각으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당시 <개그야>는 지금도 그랬지만 여전히 반응이 안 좋았습니다. KBS2 <개그콘서트>는 16년째 정상급 프로그램이고,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한때 정상에 오른 경력이 있지만 <개그야>는 그런 기억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국주는 대중의 관심을 정말로 갈구하는 그런 개그우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SBS <룸메이트> 방송에서 너무 많은 스케줄에 “숨이 막힐 것 같다”고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방송을 탔습니다. 2006년 MBC 공채 개그우먼 출신으로 7년에 가까운 무명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올해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어떤 행동이든 솔직하고 감정의 가감없이 돌진하는 그녀이기에 힘들다며 흘리는 난데없는 눈물이 너무나 솔직해 보여 한편으로는 이해됐습니다.

이국주는 일이 없는 동료나 후배 개그우먼, 심지어는 회사 직원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주면서 “언니라고 부르라”며 토닥여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호쾌한 면이 그의 인기 원인이었습니다. 인기가 많은데 힘들다고 푸념하는 것이 어떤 분들에게는 안 좋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돈보다는 대중을 웃기는 일 자체가 즐거운 사람, 그래서 돈을 벌다 보니 진짜 일이 된 웃음이 버거운 사람이 바로 이국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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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다 보니 ‘이국주를 위한 변명’처럼 됐네요. 그가 소속사에서 수입이 제일 많은 개그우먼이 됐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푸짐한 외모에도 거침없이 “호로록~”을 외치는 그가 지금처럼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활약했으면 합니다. TV 속에 너무 예쁘거나 예쁜 척하는 사람들만 가득하면 재미 없잖아요.

<하경헌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