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호빗: 다섯군대 전투-종착역에 온 판타지원정대

제목 호빗: 다섯군대 전투

원제 The Hobbit: The Battle of the Five Armies

감독 피터 잭슨

등장인물 간달프Ι이안 맥켈런, 빌보 배긴스Ι마틴 프리먼, 소린Ι리처드 아미티지, 스마우그Ι베네딕트 컴버배치

상영시간 144분

개봉 2014년 12월 17일

2002년 신년을 맞이하던 날 기자는 명동에 있었다. 심야영화로 밤을 샌 뒤 종로2가의 조계사까지 무작정 걸었다. 조계사 대웅전 앞, 불이 붙은 연탄 탑으로 한겨울 추위를 녹이며 새해 첫차를 기다렸다. 그때 본 영화가 <반지의 제왕>이었다. 햇수로 12년 전이다.

피터 잭슨 감독은 소수의 마니아를 거느린 B급 공포영화 감독이었다. 국내에도 그의 팬들은 꽤 있었다.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괴랄한 이름을 달고 비디오로 출시된 그의 장편 데뷔작 <배드 테이스트(Bad Taste)>(1987)의 주요 장면은 대부분 가위질되었다. <데드얼라이브>(1992)에서는 잔디깎이로 좀비들을 몰살하는 장면 등 ‘핏덩어리 유머’가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피터 잭슨 영화들의 ‘무삭제 복사본’의 악명(?)이 퍼지면서, 아마도 흥행성 부족 때문에 국내에 당시까지 출시되지 않았던 그의 다른 작품들도 ‘작가감독 피터 잭슨’의 이름을 달고 은밀하게 복사본으로 유통됐다. <천상의 피조물>(1994)이나 인형극 <밋 더 피블스>(1989) 같은 영화들이다.

이제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를 보자. 원작자 J.R.R. 톨킨의 소설은 판타지 문학의 ‘끝판 왕’쯤 된다. 열혈 팬층을 두텁게 거느린, 말하자면 ‘판타지계의 조용필’이다. 그런데 무명의 B급 공포영화 감독이 이 시리즈를 영화화한다니? 우려가 쏟아졌다. 그리고 대반전. 12년이 지난 지금 이 시리즈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피터 잭슨의 대표작이다.

<호빗: 다섯군대전투>는 마침내 12년에 걸친 대여정의 막을 내리는 작품이다. 지난해 우리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호수마을을 급습하려 에레보르에서 비상하는 용 스마우그라는 불길한 장면을 끝으로 이 시리즈와 헤어졌다. 영화는 용과 그에 맞서는 궁수의 아들 바르드의 대결로부터 시작한다. 스마우그로부터 에레보르의 보물을 되찾은 난쟁이족 ‘참나무방패’ 소린은 보물에 눈이 멀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인간과 요정족 연합군에 다시 소린을 지원해 나타나는 난쟁이족들, 그리고 고블린 오크족과 독수리군단까지 뒤엉켜 대혈투가 벌어진다.

사실, 영화는 그리 친절하지 않다. 호빗 시리즈의 이전 두 작품 <뜻밖의 여정>(2012), <스마우그의 폐허>(2013)를 본 사람이라도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전투, 그리고 돌 굴두르에서 간달프의 수난과 그를 구하기 위해 갈라드리엘과 사루만, 엘루드가 합쳐 벌이는 싸움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는지 가물가물할 것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 도처에서 눈을 번득거리고 있는 톨킨의 팬들을 의식한 영화가 아니냐고 깎아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호빗 시리즈에서 원작에는 없는 타우리엘이 등장한 것도 톨킨 팬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터치스크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충분히 즐길 만하다. 여전히 피터 잭슨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비주얼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디테일을 놓치는 게 아쉽다면 영화관에 가기 전에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을 한 번쯤 복습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긴 하다. 감독은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호빗 시리즈뿐 아니라 반지의 제왕까지 미래의 관객들은 쭉 이어 볼 것으로 생각하고 찍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반지의 제왕> 이전부터 감독의 팬이었던 필자의 입장에서는 마침내 긴 여정을 끝낸 그가, 이제 다 내려놓고 ‘사악한 장난꾸러기 시절의 그’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마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