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우체국 사람들의 연말연시 ‘희망 배달’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사건들이 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송파구에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 모녀 사건’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집주인에게 월세·공과금과 함께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세 모녀의 비극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복지제도의 근본적인 수술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지난 11월 이른바 ‘세모녀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호들갑을 떤 지 아홉 달 만에 내놓은 대책은 빈곤층의 눈물을 닦아주기엔 어림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비극적인 죽음과 희극적인 대책이 반복되는 동안 불평등은 고착된다. 불평등은 단순히 소득의 적고 많음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능력, 기회, 자존감, 건강 등을 훼손한다. 더욱 심각한 건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풍조다. 그러니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는 정책과 법안은 늘 꼼수이거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애초부터 누군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가난한 이들의 고통도 사회가 ‘구조적’으로 나눠 갖는 게 옳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만한 수준에 도달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빈곤에 내몰린 제2, 제3의 ‘세 모녀’들은 계속 늘고 있다. 누군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지만 이웃의 선의와 나눔의 미덕은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견딜 수 있도록 부축할 순 있다.

우정사업본부(본부장 김준호·오른쪽) 봉사단은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일대에서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열고 ‘사랑의 연탄’을 전달했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십시일반,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을 만들어주는 마음은 아름답다. 탐욕이 단순한 충족이 아니라 중독이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둘러보면 어떻게든 더불어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꽤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비탈진 달동네 골목을 오르고, 남루한 시설을 방문하고, 지하 쪽방 문을 두드리는 이웃이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들의 발길은 더욱 분주하다.

그늘진 곳에 온기를 배달하는 데 우체국 직원들이 빠질 수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2일 전국 186개 우체국의 직원들이 나서서 가난한 이웃 1만4500여명의 손을 잡아주었다. 텅 빈 독에 김장김치와 쌀을 채우고 연탄을 날랐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집을 찾아 도배를 하고 바람막이용 비닐창문을 달았다. 우체국의 ‘희망배달’은 이날 하루만의 행사가 아니다. 제주 서귀포우체국, 남부산우체국, 원주우체국 등을 시작으로 이미 지난달부터 지역 특성에 맞춰 시작되었다. 경로식당을 열거나 영양도시락을 배달하고 독거노인, 소년가장,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내복·이불·전기장판 등 난방용품을 전달했다. 장애인 이웃에겐 휠체어 이동이 쉽게 집을 수리해주기도 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사회공헌활동은 규모나 형식면에서 다른 공기관들보다 상대적으로 활발하고 체계적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지원, 소아암 환자 지원, 행복보험 등으로 500억원 이상을 후원했다. 지난해부터는 복지사각지대를 줄이고 사회공헌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랑나눔(장애인·노인·여성), 희망나눔(아동 및 청소년), 그린나눔(환경보존·산림보호), 우정나눔(우체국 네트워크 활용한 지역밀착 사업)으로 지원대상과 범위를 세분화했다. 229개에 달하는 ‘집배원 365봉사단’이 소외계층의 손·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밥 때가 지나도 이웃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으면 들여다보고 먹을거리를 나누던 게 우리 선조들의 삶이다. 물론 이런 작은 나눔활동이 ‘부자들과 나머지 우리’로 나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지만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나누는 게 인지상정이다.

우정(郵政)이야기

“만약 우리가 자기 것을 손에 쥔 채로 우리보다 뒤처진 사람들을 위해 돈과 시간을 포함한 어떤 노력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쓰러져가는 사회가 떠안은 문제 자체이지, 그 해답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미국 미시시피주 최초의 흑인 여성변호사 메리언 파이트 에덜먼)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