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7) 안전규제에 관한 지자체의 권한을 허하라

지자체의 의견이 탄력적으로 반영되는 안전협정이 도입되면 안전대책 제고를 통해 오히려 핵발전소를 포함한 혐오시설 입지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핵발전소는 사고·고장 등으로 긴급 정지할 경우 원인이 해결돼도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을 방해하는 중성자독(毒) 때문에 곧바로 재가동을 할 수 없다. 즉 핵발전 기술의 구조적 결함 때문에 단계적으로 출력을 올려야 하므로 출력을 100% 재가동하기까지는 며칠의 기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100만kW급(전기출력) 핵발전소의 경우 가동을 정지하면 하루에 약 10억원의 전기 판매 손실이 나는데, 정부의 책임 추궁 등을 우려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웬만한(?) 사고·고장은 감추고 가동을 계속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된다. 게다가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원자력손해배상제도를 통해 국가가 배상책임의 대부분을 지원하므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자의 자발적인 노력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0월 29일 노후 원전 폐쇄를 주장하며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청계천까지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한수원이 은폐하고 있었던 핵발전소의 사고·고장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12년 2월에 발생한 고리 1호기의 12분간에 걸친 전(全)교류전원상실(SBO) 사건은 국내 핵발전소에서 가장 심각한 안전불감증 사례였다. 또 월성 1호기의 사용후 핵연료봉의 낙하·파손 사고도 5년간이나 감춰져 있었다. 한수원은 당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적합하게 처리했다는 입장이지만 의도적으로 은폐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 의식을 엿볼 수 없는 정부, 특히 원자력안전위원회 및 산하의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의 규제기관들도 감독능력 부족으로 이미 지역주민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핵발전소의 안전 확보에 관한 권한과 책임 등의 안전규제는 국가사무로서 중앙의 규제기관에 일원화돼 있다.

일본의 원자력안전협정 도입 검토해야
지자체가 법적 근거를 갖고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전원개발사업추진위원회의 심의전(前) 단계에 있는 광역시장·도지사의 의견청취뿐이다. 그밖에 지역의 공개토론회·설명회 등의 개최는 어디까지나 참고의견 수집과정으로 핵마피아의 알리바이 만들기, 즉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주민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방사성물질의 방출에 대한 감시체제, 사고발생 시의 피난계획 같은 방재계획을 중앙의 규제기관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방자치제도의 원칙에서 보아도 관련(입지·주변) 지자체가 안전규제에 관한 일정 권한과 재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안전행정의 간소화·집중화로 핵발전소 입지비용의 최소화를 꾀하는 정부로선 양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대안으로서 일본 특유의 제도로 핵발전소 및 관련 시설이 있는 도·시군읍·사업자의 3자 간에 체결하는 원자력안전협정(이하 안전협정)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안전협정은 지방조례와는 달리 안전규제에 관한 국가의 역할(사무)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주민보호라는 지자체의 책무 수행을 돕는 실질적인 장치로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안전규제가 국가사무로 돼 있어 핵발전소 가동 초기의 잦은 사고·고장에도 불구하고 입지 지자체는 발생 사실을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등 안전규제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였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69년에 과거 공해방지협정의 경험을 살린 최초의 안전협정이 후쿠시마현(縣)과 도쿄전력 간에 체결됐다. 이후 안전협정은 일본의 모든 입지지역이 도입하고 있다. 안전협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신사(紳士)협정에 불과하지만 핵발전소의 건설·변경에 따른 재가동 등의 경우 반드시 입지 지자체(도·시군읍)와 사전협의를 통해 수장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전협정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지자체의 입회조사 및 연락체제의 확립을 중심으로 강화돼 왔으며 각 지역의 협정서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입지 지자체는 전력사업자(일본은 민간기업)에게 정부의 안전규제보다 엄격한 안전성을 촉구하면서 독자적으로 핵발전소 주변 환경의 감시 및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후쿠이현(福井縣)은 방사능 누출사고의 입회조사를 통해 2년간 은폐됐던 핵연료 파손사건(1974년), 방사성폐액 방출사건(1981년), 몬쥬사고 촬영비디오의 위장사건(1995년) 등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례들을 밝혀내기도 했다.

또 지역 내 핵발전소의 증기발생기 조기(早期) 교체도 실현시켰다. 사업자의 경제성과 안전신화의 붕괴를 염려해 조기 교체를 꺼렸던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입지 지자체의 교체신청에 대한 사업자의 자주적인 대응 결과였다. 최근 국내에서 한울핵발전소 3·4호기 증기발생기가 가동 15년 정도 만에 조기(?) 교체된 것 때문에 비난하는 이도 있으나 일본보다 가동률이 높은 국내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늦은 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핵발전소 규제기관은 사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므로 안전기준도 비용이 높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평균적인 기술수준을 반영한 것으로 돼 있다. 즉 사업자가 안전기준을 준수하더라도 결코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자체 안전 강화로 재해를 모면한 경우도 있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폭발 위기를 면한 토카이(東海) 제2핵발전소의 경우 2007년에 이바라키현(茨城縣)이 예측한 결과에 따라 전력사업자가 정부의 쓰나미 기준보다 높은 방호대책을 도입한 덕택이었다.

시대착오적 전원개발촉진법 폐지를
지금처럼 핵발전소의 입지가 중앙의 획일적인 의사결정만으로 계속 추진되면 ‘필요하면 짓는다’는 식의 안이한 건설이 되기 쉽다. 관료들은 국책 또는 공공성을 앞세워 안전행정을 일원화하는 등 핵발전소 반대파를 철저히 봉쇄하는 폐쇄성과 자기도취적 발상에서 단락적인 추진정책을 밀어붙인다. 관료들은 사회문제에 대한 정책의 최적화를 비용·편익의 비교분석을 통해 추구하는 데 지역주민의 생존권 같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관계조차 상대화시켜 판단할 뿐이다.

한편 지자체의 의견이 탄력적으로 반영되는 안전협정이 도입되면 안전대책 제고를 통해 오히려 핵발전소를 포함한 혐오시설 입지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지자체가 정부보다 신속한 대응을 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효율적인 안전규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므로 안전 전담부서를 신설해 신뢰성 및 안전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재원으로서는 현행 지역자원시설세의 확충 또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세 신설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핵발전소의 정상 운전 이외의 모든 이상(異常) 발생을 지자체에 보고하도록 한 이카타 방식(伊方·1990년) 도입도 적절할 것이다. 사고 내용에 따라 즉시 공표(A구분), 연락 후 48시간 이내 공표(B구분), 매월 10일에 1개월 전의 것을 공표(C구분)하는 등 세 가지로 나누어 관할 지자체인 애희메현(愛媛縣)이 직접 보도기관에 공표하고 홈페이지에도 사실을 게재한다. 예를 들면 A구분에는 노동재해에 따른 구급차의 요청, 기름·약품의 부지 밖 누출 등도 포함된다.

장정욱 교수의 ‘탈핵을 꿈꾸며’

현재 국내에서 원자력안전협정의 즉각적인 도입에 아무런 법적 장해물도 없다. 오히려 정부가 지방자치를 존중한다면 국가사무와의 충돌도 전혀 없는 안전협정 체결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마땅할 것이다. 단, 지자체의 기본적인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전원개발촉진법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지자체도 법적 근거가 없는 안전협정을 단순히 주민으로부터 안전대책의 부실을 지적당할 경우에 대비한 면죄부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안전협정의 체결을 통해 안전규제에 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접근해 주민보호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