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영웅 가족의 남겨진 상처

호부견자(虎父犬子). 호랑이 아비에 개의 자식이란 한자 뜻 그대로, 훌륭한 아버지에 못난 아들을 일컫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예는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호부견자로 손꼽히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준생이다. 안중근이 누구인가. 일제의 초대 조선통감이자 을사조약의 장본인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함으로써 대한독립군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치고 결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민족의 영웅이다.

그런데 그 ‘영웅’의 아들 안준생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아니, 알아도 모른 척 지우고 싶은 이름이다. 안중근의 의거를 영웅적 행위가 아닌 사적인 테러로 비하시키고 싶었던 일제는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을 데려다가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죄하게 만들었고, 그 대가로 안준생에게 돈을 주었다. 이로 인해 안준생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한 ‘더러운 변절자’란 낙인이 찍혔고, 평생 일제와 동포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떠돌아다니다 이름 없이 죽었다.

연극 <나는 너다> | 돌꽃컴퍼니 제공

정복근 작, 윤석화 연출의 연극 <나는 너다>는 바로 이 ‘견자’ 안준생의 시점에서 ‘호부’ 안중근의 삶과 행적을 돌이켜보는 작품이다. 몇 년 전,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작품은 안중근과 안준생의 엇갈린 삶과 아직도 황천을 떠돌아다니는 이들 부자의 모습을 통해 1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우리의 역사적 책임을 묻고 있다. 실제로 해방 70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도 안중근은 유해조차 찾지 못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상태이고, 친일파로 낙인찍힌 안준생은 민족의 수치로 치부되어 역사 속에 매장당한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나는 너다>의 주인공 안준생과 안중근은 둘 다 여전히 황천을 떠돌고 있다. 죽은 뒤에도 민족의 지킴이들과 가족으로부터 쫓기고 냉대 받는 안준생은 영웅의 아들이란 이유로 일제에 철저히 이용당한 채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묻는다. “대체 왜 아버지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서 나를 망치고 가족을 버린 것입니까?” 그리고 무대는 과거로 돌아가 안중근의 뜻이 무엇이며 그가 어떻게 행동하고 죽음을 맞이했는지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손가락을 잘라 구국의 의지를 다지는 단지동맹, 장부가를 배경 삼아 교수대의 계단을 오르는 사형 장면 등은 여전히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연극 <나는 너다> | 돌꽃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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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준생에게는 이러한 역사적 대의만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남겨진 가족들이 어떤 고통과 비참함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했던 아버지에게 그는 왜 꼭 그래야 했냐며 피맺힌 절규를 쏟아낸다. 그리고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안준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아버지 안중근이 조용히 답한다. “너, 너를 위해서.” 해방과 독립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바로 너,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그 길을 선택했다는 말에 안준생은 뒤늦게 회한의 눈물을 쏟는다. 그동안 <덕혜옹주> <나, 김수임>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 속 소외된 이들에 대해 애틋한 연민의 시선을 보여준 작가 정복근은 이 작품에서 영웅 안중근뿐만 아니라 그 그늘에 가려진 아들 안준생의 아픔까지 끌어안음으로써 상처 많은 우리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12월 3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