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청양의 해, 연하우표에 담긴 뜻

어느새 12월이다. 청마의 해라며 도약과 행운을 장담하던 목소리들 가뭇없다. 돌아보면 기쁨과 환호보다 한숨과 후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년이라는 이름으로 우울한 기억을 지우고 제 깜냥껏 새날을 전망하고 설계한다. 또 새해의 연운(年運)을 점쳐보기도 하는데 대개 그해 수호동물인 12지 동물의 성격과 행태와 연결해서 풀이하는 게 보통이다. 말띠 해는 말을 닮아 활기차고 양띠 해는 양을 닮아 평화로울 거라는 식이다.

내년은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다. 양 중에서도 청양(靑羊)의 해다. 10간의 갑과 을의 상징색이 청색이어서다. 양은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로 평화의 동물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온순하여 큰 눈망울은 금세라도 눈물을 흘릴 듯하다. 뿔이 있지만 다른 동물을 해치는 법이 없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도 위계를 놓고 좀처럼 싸우지 않으며 암컷을 독점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자연에 순응하는 환경친화적 동물이다.

우본이 을미년 양의 해를 맞아 발행한 연하우표 4종. 디자인은 모두 우표디자인공모대전 수상작품들이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양은 희생의 동물이다. 성질이 유순하고 마음이 맑고 인내심이 강하니 번제물로 이만한 동물이 없다. 그래서 희생양이고 속죄양이다. 상형문자인 양(羊)은 아름다움(美), 착함(善), 상서로움(祥)과 뜻이 상통한다. 큰 양(大羊) 두 글자가 위 아래로 합쳐져서 아름다울 ‘美’가 되고, 나(我)의 좋은 점(羊)을 키우니 의로울 ‘義’ 자가 된다. 양은 이렇게 글자만으로도 착하고 아름답고 의롭고 상서로움을 드러낸다.

양은 은혜의 동물이다. 혹시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털로 뒤덮인 양의 신체에서 털이 없는 부분이 한 군데 있다. 무릎이다. 습성상 무릎을 꿇고 있는 시간이 많아 굳은살이 박인 탓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보고 “양도 무릎을 꿇고 어미 은혜를 안다”고 했다. 어미젖을 먹을 때도 무릎을 꿇고, 아비 양이 늙어서 기력이 떨어지면 제 젖을 물려서 봉양할 만큼 효심 깊은 동물이 양이다.

순한 양이지만 의외의 성질도 갖고 있다. 화를 내지 않다가도 냈다 하면 물불 안 가릴 만큼 다혈질이다. 늑대 등 천적의 습격으로 바로 옆에서 동료가 물려가도 태연하게 풀을 뜯을 만큼 굼뜨지만 기억력 하나는 비상해서 자신이 놀랐던 경험을 잊지 않는다. 천적으로부터 봉변을 당했던 길은 다시 가지 않고, 마셨다가 탈이 난 적 있는 물가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며, 몸에 해로운 풀은 귀신같이 골라낸다. 한국인의 관념 속에서 양은 어질고 참을성 많고 길한 동물의 상징이다. 그래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체로 양띠에 호감을 갖는다. 양의 좋은 품성을 닮았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양의 해엔 딸을 낳아도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았다’는 속설이 있을까.

속담에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는 말도 있다. 양처럼 순하고 정직해서 부정을 보지 못하고, 너무 맑아서 부자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띠 인물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1955년생 양띠다. 철강 왕 앤드루 카네기, 버버리 신화의 토마스 버버리도 양띠 생이다.

우리는 12지를 말할 때 보통 양과 염소를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양과 염소는 다른 속(屬)이며 염색체수도 다르다. 엄격하게 말하면 면양(綿羊)을 양이라 하고 산양(山羊)을 염소라 부르는 게 맞다. 영어로는 sheep과 goat로 구분이 확실한데 동양 특히 우리나라에선 ‘羊’자로만 표기한 경우가 많아 혼동을 일으킨 듯하다. 현재 지상에는 약 200종의 양이 살고 있는데 그 쓰임새는 실로 다양하다. 뼈에서 가죽, 털, 고기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으니 ‘다 주는 동물’이다.

양띠 해를 맞아 우정사업본부가 12월 1일 내놓은 연하우표가 눈에 띈다.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양들을 담았다. 디자인은 2013년 대한민국 우표디자인 공모대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이다. 청소년과 일반인들의 작품이라 더욱 정겹다. 이런 우표가 붙은 편지 한 통 받으면 쓸쓸한 마음도 금세 푸근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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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실망스럽고 개인의 미래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새해로 건너가고 싶어한다. 갑오년 끝자락에 선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연하우표 속 양처럼 을미년은 부디 복스럽고 평화롭기를!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