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국제커플 1호 김수로왕 특별우표

우표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책이다. 손톱 만한 크기지만 그 안에 무수한 설화와 신화와 역사가 숨 쉬고 있다. 단군왕검, 부여 금와왕, 고구려 주몽, 발해 대조영, 신라 박혁거세, 백제 온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되새기기 위해 2008년부터 우정사업본부가 시리즈로 발행한 특별우표가 대표적이다. 올해로 마지막인 시리즈의 주인공은 가야 김수로왕이다. 금관가야 시조신인 수로왕 이야기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온다. 이번에 나온 특별우표에는 그 중에서 수로왕 탄생, 황후를 맞는 부분 등 다섯 장면을 담았다.

우본이 11월 28일 내놓은 김수로왕 특별우표.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일깨우기 위해 2008년부터 발행한 시리즈 중 마지막 우표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표1. 9촌장 시대. 천지가 개벽했지만 나라 이름도 없고 임금과 신하 칭호도 없다. 아도간(我刀干) 등 9간(九干)이라는 추장들이 씨족을 통솔했다. 휘하의 백성은 모두 100호에 7만5000명이었다.

우표2. 구지가(龜旨歌). 곧 강림하실 지도자에게 신성을 입히는 신탁의 노래다. 액운을 씻는 계욕일에 북쪽 구지봉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200~300명의 무리가 모여들었는데 몸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하늘이 내게 명하기를 ‘이곳에 내려가 나라를 새롭게 하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너희는 봉우리 흙을 파면서 이렇게 노래하고 춤을 추어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을 것이다.”

우표3. 황금알. 사람들이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노래하며 춤을 추었더니 붉은 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줄 끝의 붉은 보자기 속에 금합이 있고 그 안에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모두 놀라 알을 향해 백배했다.

우표4. 탄생. 12일 후 무리들이 아도간의 집에 옮긴 금합을 열었다. 그러자 여섯 개의 알이 모두 사내아이로 변했는데 그 모습이 훤칠했다. 아이들은 열댓새가 지나자 장성해 신장이 9척이나 되었다. 알 중에 가장 먼저 태어난 이가 왕위에 올랐는데 이름을 수로(首露)라 하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伽倻國)이라 했다.

우표5. 로맨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커플이자 다문화 커플인 김수로와 허황후 혼사이야기다. 추장들이 자기 딸들 중에서 배필을 고르라고 청하자 왕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하늘의 명으로 강림했듯이 왕후도 하늘이 내려 줄 거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바다 서남쪽으로부터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배가 와 남해 별포나루에 닿았다. 16살의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탄 배였다. 부모의 분부대로 하늘이 내린 가락국왕을 배필로 삼기 위해 머나먼 뱃길을 온 것이다. 왕은 기뻐하며 행궁을 짓고 영접했다. 20여명의 수행원과 온 황옥은 비단, 금은, 구슬과 옥, 장신구, 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물을 갖고 왔다.

왕과 황후는 맑은 밤 두 차례와 밝은 낮 한 차례, 2박3일에 걸쳐 합환식(혼인식)을 올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기원후 48년,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일이다. 슬하에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두었는데 둘째, 셋째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따르게 했다. 그들이 김해 허씨 시조다. 아들 중 일곱은 선불이 되었다. 189년 3월 1일에 왕후가 붕했는데, 나이는 157세였다. 백성들이 마치 땅이 꺼진 것처럼 탄식하며 구지봉 동북쪽 언덕에 장사지냈다. 왕후가 죽자 왕은 슬퍼하며 탄식하다가 10년 뒤에 붕했다. 나이는 158세. 140여년을 해로한 부부는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등 600만 후손들의 시조와 시조할머니로 지금껏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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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후의 도래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범인들로서는 어느 설이 맞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런 설화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외부세계와 만나고 이해했는지 넘겨짚을 뿐이다. 삼국유사의 유사(遺事)는 ‘남겨진 사실’을 뜻한다. <삼국사기>라는 정사에 실리지 못한 부스러기 사실이라는 뜻이겠다. 일연은 그 부스러기 역사 속에서 조상들의 상상력을 읽었으리라. 그동안 우리는 신화와 설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치부해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화 속 신과 영웅들이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속 주인공으로 부활해 각광받고 있다. 문화산업은 상상력을 먹고 큰다. 그 상상력은 설화와 신화와 역사에서 나온다. 300원, 540원짜리 자그마한 그림책, 특별우표 한 장이 우리를 설화와 신화의 세계로 안내해 잃어버린 상상력을 자극한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