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의 추억, 작품이 되다

현대차 광고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화제… 사연 받아 예술가들이 직접 만들어

자동차에 얽힌 추억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광고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는 이런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광고에 나오는 예술작품은 예술가들이 작업해 만든 실제 작품들이다.

브릴리언트 메모리즈 시리즈에서 첫 번째로 나온「Mr Taxi」는 아티스트 칸(본명 정석준)의 작품이다. 서울예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자동차를 오브제로 활용하여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30년간 택시기사로 일해온 김영귀씨(66)의 그랜저를 작품 「Mr Taxi」로 만들었다. 김씨가 은퇴를 결심하며 오랜 시간 생계를 책임져준 그랜저를 폐차하자, 이를 작품 소재로 삼았다.

아티스트 칸은 항상 앞좌석에서 운전만 했던 김씨가 은퇴 후에는 뒷좌석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차량 뒷좌석을 활용해 소파를 제작했다. 택시 번호판까지 부착된 택시의 트렁크에 뒷좌석 의자를 넣은 소파가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아티스트 칸(오른쪽)은 은퇴를 한 택시운전사의 그랜저XG 차량 뒷좌석을 이용해 작품 <Mr Taxi>를 만들었다. | 현대차 제공

아티스트 칸(오른쪽)은 은퇴를 한 택시운전사의 그랜저XG 차량 뒷좌석을 이용해 작품 를 만들었다. | 현대차 제공

30년 간 택시 몰던 기사에게 ‘휴식’ 선물
아티스트 칸은 현대차의 이번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의 콘셉트가 자신의 가슴에 와닿아서 선뜻 작품 제작을 승낙했다고 밝혔다. 브릴리언트 메모리즈가 표방한 콘셉트는 ‘오랫동안 함께했던 자동차를 떠나보내면 그 차와 함께했던 추억도 떠나갑니다. 그 소중한 추억을 당신께 돌려 드립니다. 당신의 추억, 예술작품이 되다’이다.

아티스트 칸은 “제가 만난 택시운전사는 30년간 택시 운전을 했고 그분이 마지막으로 타고 제 작품의 재료가 되어준 현대 그랜저XG는 무려 70만㎞를 달린 차였다”면서 “자동차로 벌고, 자동차에서 쉬고, 인생의 3분의 1을 자동차와 함께했던 눈물겨운 사연을 소재로 그분에게 보답이 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택시 그리고 나의 가족>이라는 브릴리언트 메모리즈의 첫 번째 광고로 소개됐다.

현대차는 2012년 선보인 브랜드 캠페인 ‘리브 브릴리언트’(live brilliant)의 네 번째 시리즈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쌓은 추억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차의 일부를 예술작품으로 탄생시켜주는 ‘브릴리언트 아트워크’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브릴리언트 아트워크’를 통해 연극배우인 이도엽씨(42)의 싼타페는 아티스트 에브리웨어(Everyware)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에브리웨어는 방현우씨와 허윤실씨 부부를 중심으로 양가의 아버지, 부부의 동생들(부인의 친동생과 남편의 사촌동생) 등 6명이 함께 일하는 미디어아트 그룹이다.

에브리웨어는 12년간 이씨와 청춘을 함께했던 폐차 차량에서 핸들과 컨베이어벨트 등을 분리해 <메모리얼 드라이브>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핸들을 돌리면 전면에 설치된 후방 카메라가 이씨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천천히 줌인하며 추억의 시간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자동차 속에 녹아 있는 수많은 추억을 3차원 축적 모형인 ‘디오라마’로 제작한 것이다.

아티스트 이광호씨가 만든 작품 <안녕 베라>. | 현대차 제공

핸들을 돌리면 추억의 사진 감상
방씨 부부는 “핸들엔 사연자의 손때가 묻어 있다. 이 핸들을 통해 추억의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연자에게는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작가는 “자동차는 사람들이 굉장히 감정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면서 “자동차에는 예술적인 감성을 이끌어내는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입체작업을 하는 김병호 설치작가는 사진작가 김찬홍씨(60)의 갤로퍼를 「Eight Frame」이라는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20년 동안 갤로퍼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닌 김씨가 카메라의 프레임을 보듯이 갤로퍼의 창으로 풍경을 내다보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가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김병호 작가는 갤로퍼의 8개 창문을 하나로 이어 붙이고 틀에 넣어 굳힌 조형물을 만든 다음 작품 상단에 자동차 뒤에 있던 갤로퍼 로고를 그대로 옮겨 붙였다.

김병호 설치작가가 사진작가 김찬홍씨의 갤로퍼를 소재로 만든 작품 <Eight Frame>. | 현대차 제공

김병호 설치작가가 사진작가 김찬홍씨의 갤로퍼를 소재로 만든 작품 . | 현대차 제공

김 작가는 2005년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주로 금속을 소재로 해서 기하학적인 입체미술 작품을 만들어왔다. 김 작가는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흔적 즉 메모리를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과 브릴리언트 메모리즈가 맥을 같이했기에 작품 아이디어가 금방 나왔다”고 말했다.

캐나다로의 이민을 준비하면서 정들었던 베라크루즈를 판 노수린씨(45)의 사연은 아티스트 이광호씨의 손을 통해 <안녕 베라>라는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씨는 홍익대 금속조형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2006년부터 가구·조명 등의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씨는 “베라크루즈와 많은 추억을 공유한 사연자는 외국에서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분”이라면서 “이민에 꼭 필요한 여행가방으로 자동차를 재탄생시켜 추억을 갖고 가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동차 시트만 봐도 옛생각과 추억에 울컥하는 분이었기에 시트가 심하게 낡아 있었지만 그대로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에브리웨어의 방현우·허윤실 부부는 <메모리얼 드라이브>란 작품을 만들었다. | 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폐차할 예정이거나 중고차 판매로 차량을 떠나 보낼 예정인 현대차 보유고객들을 대상으로 차량과 관련된 사연을 최근 응모받았다. 이들 중 10명을 선정해 이들이 타던 차량 및 부품을 유명 아티스트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브릴리언트 아트워크’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고객들의 추억이 담긴 차량과 그 기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며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