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액트 오브 킬링-잔혹하고 우매한 ‘학살의 추억’

(주)엣나인필름

제목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제작연도 2012년

제작국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러닝타임 159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출연 안와르 콩고, 하지 아니프, 시암술 아리핀

개봉 2014년 11월 2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965년 9월 30일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쿠데타 미수는 100만명이 넘는 자국민 학살로 이어졌다. 공산주의자와 지식인, 중국인과 빨갱이로 내몰린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살해당했고, 그들의 숨을 끊은 대다수는 스스로를 ‘프레만’(Freeman)이라 자칭하는 용역깡패들이었다. 이 사건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국인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여전히 그날의 어두운 그늘 밑에서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아보기로 결심한다. 학살된 피해자들과 그 자손들을 취재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잦은 공권력의 개입과 기득권 세력의 방해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다시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피해자들의 두려움이었다.

끊임없는 난관에 봉착해 작품의 진행이 불투명해질 즈음 감독은 전혀 다른 지점에서 기회를 포착한다. 차라리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을 자랑스럽게 뽐내고 영웅대접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면 어떨까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기적처럼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당신이 저지른 일을 영화로 찍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그들은 환호했다. 정부의 전폭적 지지까지 이끌어낸 그들은 단순한 자문 정도가 아니라 출연은 물론 각본과 연출까지 해가며 왕성한 창작력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이들 ‘가해자’ 무리 중 중심에 선 사람은 ‘안와르 콩고’라는 인물이다. 젊어서는 극장 앞에서 영화 암표를 팔던 그는 무수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화려한 은막 속 세상을 부러워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두루 좋아했지만 특별히 범죄 스릴러와 서부극을 좋아했던 그는 많은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처형하는 데 영화의 도움을 많이 받았노라고 회고한다. 안와르와 친구들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좋아했던 영화들의 무대를 끌어온다. 그렇게 고문과 살인이 벌어지는 영화 속 영화의 공간은 초현실적으로 변화하며 나열되고, 심지어 화려한 뮤지컬이 차용되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여러모로 빼어난 것은 분명하다. 허나 일일이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영화제에서의 수상 기록과 유난히 과장된 극찬을 쏟아내는 국내 언론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극성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처음 감독의 의도대로 2시간 39분으로 편집된 감독판과 이후 영화제와 세계 배급을 위해 1시간 59분으로 재편집된 리미티드 버전이다.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은 이 영화의 절대적 지지자 중 한 명이다. 그는 40분 정도가 긴 감독판이 도리어 더 짧게 느껴진다고 평한다. 감독판에 존재하는 기나긴 적막이나 멈춤의 순간들이 관객들에게 좀 더 인물의 감정을 쫓아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이다. 국내에 개봉하는 버전은 감독판이다.

터치스크린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러한 학살의 역사를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힘든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의 삶 또한 누군가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잔혹하고 우매한 학살의 역사가 결코 남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통 역시 타인의 것이 아닌, 이제는 무뎌져 망연스레 안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것이라는 것을. 끔찍하고 이해되지 않는 남의 나라의 모습 속에 여전히 변화 없이 진행되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더욱 견디기 힘들고 슬픈 경험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