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혈세만 먹고 ‘지지직’ 재난통신망사업 12년 허송

해마다 예산 불어나는데 기술개발은 제자리… 필수기능도 안 갖춘 단말기 지하에만 가면 불통ㆍ먹통

재난안전통신망 사업은 국가가 얼마나 쓸모없이 돈을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와도 같다. 처음으로 국가 통합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경찰서, 소방서 등 재난 관련 기관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의 무전기를 사용했다. 채널을 선택하고 버튼을 누르면 ‘삐비빅’ 하는 소리가 난다. 그 뒤에 말을 하는 방식이었다. 아날로그 무전기는 디지털 무전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 다른 부처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부처 안에서도 조금만 거리가 떨어지면 무전이 잘 들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2002년 6월 감사원은 통합지휘 무선통신체계가 필요하다고 국무조정실에 건의했다.

1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재난안전통신망에 쓰일 주파수를 확정하는 주파수심의위원회가 열렸다. 발언자는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이다. | 연합뉴스

2002년 감사원 도입 건의로 본격 논의
통합 재난안전통신망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03년 초였다. 그해 2월 18일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다. 지하철과 경찰서, 소방서가 각기 다른 무전망을 사용하다보니 상호간 소통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구지하철의 경우 각 열차와 지휘통제실은 무전이 통했지만, 열차끼리는 무전을 나눌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뒤에서 들어오는 열차가 앞 열차를 피하지 못해 피해가 더 컸다.

참사를 계기로 국회는 ‘국가 재해·재난 방지를 위한 종합 안전수립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통합지휘망에 대한 구체적인 첫 계획은 2003년 12월에 나왔다. 당시 중앙안전대책위는 테트라 방식의 통합지휘 무선통신망 구축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한다.

테트라는 유럽 무선통신표준기구가 정의한 디지털 주파수 규격이다. 현재 경찰, 소방서, 병원 등지에서 주로 사용되는 무전기가 바로 테트라 무전기다.

2004년 6월 소방방재청이 탄생하면서 통합 무선지휘망 주관부처가 소방방재청으로 이관된다.

같은 해 9월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통합 무선망 구축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 당시 KDI는 2005년부터 3년간 약 3035억원의 사업비가 필요하며, 경제적인 타당성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5년 5월 소방방재청은 통합 무선망을 구축하는 세부 추진계획을 세우고 2005년 10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시범사업,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1차 확장사업을 진행했다.

시범사업에는 약 119억원, 1차 확장사업에서는 317억원이 들었다. 시범사업에서 경찰청, 소방방재청을 비롯해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의 지자체에 통합형 단말기 약 1000대가 지급됐다. 1차 확장사업 때는 전국 250개 광역·기초단체와 11개 국가기관, 19개 공공기관에 약 4200개의 단말기가 지급됐다.

하지만 재난통신망 사업이 돈 먹는 하마가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4년 3000억원 선으로 예상했던 사업비가 점점 늘어났다. 2006년 5월 소방방재청의 정보화 전략계획에 따르면, 총 예상 사업비는 기존의 2배를 넘는 7826억원 선으로 증가했다. 이 계획에서 소방방재청은 2009년까지 전국 각지에 1100곳의 기지국을 세우고 총 20여만대의 무전기를 보급할 예정이었다.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감사원은 통합 무선망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감사원은 통합 재난망이 기존에 예측된 것을 상회해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며,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경제타당성 조사 할 때마다 다른 결과
또한 소방무선에서 필수적인 지하 시설물 등에 대한 통화권이 확보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하에서 통화가 되지 않는 문제는 시범사업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문제였다. 정보통신정책원이 2008년 5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통합형 단말기 이용자들의 과반수는 지하에서 무전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불만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감사원은 지하에서의 통화품질을 개선하는 데에만 수천억원 이상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KDI가 다시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했다. 2009년 KDI가 발표한 타당성 보고서에 따르면, 애초 소방방재청의 구상대로 통합 무선통신망을 구축할 경우 비용 대비 편익 수치가 0.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절차를 개선해도 이 수치는 1을 넘지 못해 경제성도 없고 정책적 타당성도 낮다는 것이 KDI의 평가였다.

물론 KDI가 경제성이 있다고 본 5년 전 보고서와 확연히 다른 입장을 제출한 것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도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09년 12월 보고서는 “평가대상 기간인 2003~2007년은 대형재난이 발생하지 않은 시기”로 재난피해액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재난피해액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은 그만큼 통합 무선망으로 인한 편익이 작게 측정됐다는 것이다.

감사원과 KDI의 지적 이후 행정안전부에서 통합지휘 무선통신망 업무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듬해인 2010년 2월, 정부는 재난통신망 추진협의회를 구성했다. 2003년부터 논의되던 테트라 방식뿐만 아니라 와이브로 등 신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테트라와 와이브로 두 가지 방식을 가지고 주로 논의가 진행됐다.

최근 정부가 LTE 방식으로 선회한 것은 올해 5월 KDI가 발행한 세 번째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서와 관련이 있다.

이 보고서는 테트라와 와이브로 두 가지 방식을 비교했다. 올해부터 2026년까지 통합 무선망을 유지했을 경우(단말기 내구연수 5년으로 가정) 테트라 방식은 총 1조원, 와이브로 방식은 약 1조50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통합 무선망을 시행하지 않을 경우 재난으로 인한 피해는 수천억원 규모였다.
즉 두 가지 방식 모두 경제성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경제논리에 앞서 대형참사 때마다 불거지는 관련 기관 사이의 통신 단절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