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비상 꿈꾸는 한국 우정 130년

올해는 우리나라에 근대 우편제도가 도입된 지 130년 되는 해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우정총국을 찾았다.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자신이 임금을 설득해 세운 총국의 개국 축하연 날 정변을 일으켰다가 멸족지화를 부른 풍운아. 29살 홍영식이다. 3일 천하로 끝난 개화의 꿈, 무모한 혁명가 홍영식은 가물가물하지만 ‘근대우정의 선구자’ 홍영식은 한 세기를 넘어서도 기억이 새롭다.

근대우정의 상징 우정총국은 홍영식의 의지로 세워진 거나 다름없다. 신사유람단, 보빙사절로 일본과 미국을 시찰한 홍영식은 고종에게 신식 우편제도 도입을 권했다. 고종은 1884년 4월 22일 전교를 내려 우정총국 창설을 공포하고 초대 총판에 홍영식을 임명했다. 이어 우정총국과 인천분국을 개국하고, 일본에 5종의 우표 인쇄를 의뢰해 먼저 도착한 5문·10문짜리 우표를 한성~인천 간 우편물에 사용했다. 우리나라가 근대 우편제도의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1884년 11월 18일의 일이다.

다른 개화문물에 비해 빨리 시작된 근대 우편제도는 출발하자마자 가시밭길이었다. 업무 개시 보름여 만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기능이 마비되고, 개국 20일 만에 고종의 지시로 우정총국이 폐지되고 만다. 우체업무는 다시 이전의 우역제로 회귀했다. 중단된 우체업무는 1895년 서울과 인천에 ‘우체사’가 개설되면서 재개되지만 이내 일제강점기의 긴 암흑기를 겪는다. 1905년 통신관리협정서 강제 조인, 1910년 총독부 통신국 설치 및 일본 우편법 시행 등 일제의 통신 침탈은 빈틈이 없었다. 근대우정의 시작은 우정주권을 세우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침탈 과정이 되고 말았다. 결국 신식 우정의 본격적 도입과 발전은 1905년 통신합동 이후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체신행정의 급선무는 일제 잔재 청산이었다. 정부는 우체제도의 정상화와 자주권 확보에 안간힘을 썼으나 우정행정의 근간인 관련법과 규칙 개정이 땜질 수준에 그쳐 일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질적인 자주권 회복은 1960년 새로운 우편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일제 강점기(왼쪽)와 2000년대 집배원 모습.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은 1980년대 이후 경쟁과 도약의 시기를 맞는다. 1995년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체신부의 기존 우편통신 업무에다 정보통신 업무를 새로 추가해 정보통신부로 개청했다. 2000년 7월에는 우정국과 체신금융국을 통합, 정보통신부 산하에 우정사업본부를 발족시킨다. 새천년 우정사업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근대 우편제도의 의미는 단순히 우편 이용을 쉽고 편리하게 해준 데 그치지 않는다. 우편환, 우편금융, 우편대체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해 사회·경제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낳았다. 우선 통신의 대중화로 정보격차 해소에 도움을 주었다. 정부는 우체제도가 ‘예산 먹는 하마’가 아니라 재정수입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운송기관의 발달은 속도혁명을 불렀고 속도혁명은 중앙과 지방을 통합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신문이나 서적 등을 싸게 배달해 문화 전달에도 기여했다. 우체국저금과 보험을 통해 축적된 자금은 공공사업에 없어선 안 될 재원이었다. (한승연 ‘근대 우정제도의 발전과 사회적 영향’)

우정역사는 지체와 발전을 거듭한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근대우편은 싸고, 평등하고, 균일한 요금을 바탕으로 국가독점권을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하고 규제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차별화되고 다양한 배달서비스를 요구한다. 편지를 제외한 모든 우정서비스는 민간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정 130년, 우정인들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당신에게 우정사업은 무엇인가’ 우본이 물어봤다. ‘국민의 효자손’ ‘모세혈관’ ‘사랑방’ ‘손수건’ ‘소통의 달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언제 긍지를 느낄까. 우정인들은 ‘서민의 벗으로 지역주민들과 밀착해 봉사한다는 보람’ ‘보편적 서비스의 철학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산다고 했다. 우정인의 이런 자부심과 긍지가 오늘의 한국우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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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에는 디지털 소통에 없는 것이 있다. 따뜻한 감성과 보편적 서비스 정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우정총국에서 20여분 거리에 우정사업의 심장 포스트타워가 있다. 건물은 두 팔을 벌리고 금세라도 날아오를 태세다. 130회 생일을 맞아 한국우정이 유유히 비상하길 바란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