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케이블 따라하기 지상파의 굴욕

마지막 몸부림인가. 위기에 몰린 지상파 예능·드라마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

11월 18일 폐지를 앞둔 SBS 예능프로그램 <매직아이>는 ‘성희롱’ 논란에 휘말렸다. 칼럼니스트 곽정은은 지난 4일 방송에서 가수 장기하에게 “처음에는 다가가기 힘든 이미지인데 라디오를 함께 진행하면서 먼저 다가가기에 적절한 남자(로 생각된다). 이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상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또 다른 출연자 로이킴에게는 “어리고 순수해 보이는데 키스 실력이 궁금하다”라고 했다. 이런 발언은 곧바로 성희롱 논란으로 번졌다.

곽정은은 종편 JTBC <마녀사냥>에서 솔직하고 파격적인 발언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그러나 곽정은을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마녀사냥>은 ‘19세 이상 시청가능’ 프로그램. 분별없이 쫓아하던 ‘15세 이상’ 프로 <매직아이>가 여론의 재판을 받은 것이다. 종편에서 화제를 모은 게스트를 초청했지만, 현지화에는 실패해 구설수에 오른 경우다.

SBS <피노키오>

MBC 일일극 <압구정 백야>는 학력 위조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를 출연시키려다 무산됐다. 신정아는 임성한 작가와의 친분으로 드라마 촬영까지 마쳤으나 방송은 불발됐다. 앞서 신정아는 여러 종편 채널을 통해 ‘복귀’를 시도했다. 지난해 9월 종편 TV조선의 <강적들>에 진행자로 발탁됐으나 차가운 여론 때문에 무산됐고, 올해 8월에는 종편 MBN의 <아궁이>에 출연했으나 여론은 싸늘했다. 별다른 화제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압구정 백야>는 신정아 카드로 반전을 노렸으나 되레 시청자들의 외면만 사고 있다.

MBC <헬로 이방인>은 외국인 출연자들이 1박2일간 한국 문화에 대해 체험하고 토론하는 예능프로그램. ‘게스트하우스’라는 설정만 빼면 JTBC <비정상회담>을 연상시킨다. <비정상회담>은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의 뜨거운 설전으로 ‘기미가요’ 논란도 잠재우며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새로운 콘셉트가 없어 아류작 오명을 벗지 못한 <헬로 이방인>은 3%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tvN <미생>의 인기 요인은 ‘막장’이라는 군더더기 요소 없이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대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드라마 팬들은 이 드라마가 지상파로 갔다면 이렇게 ‘웰메이드’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미생이 만약 지상파로 나왔다면…’이라는 글은 주인공 장그래는 출생의 비밀을 품은 채 비범한 능력이 있고, 안영이는 장그래에게 차차 끌려 사랑하게 되고, 장백기는 안영이에게 첫눈에 반해 장그래를 적대시한다고 예상한다. <미생>이 케이블 채널이 아닌 KBS·MBC·SBS를 통해 방영됐다면 캐릭터에 막장 요소가 투입됐을 거라는 시청자들의 ‘핀잔’이다.

SBS <매직아이>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이 너도 나도 육아에만 올인할 때, 케이블채널이나 종편은 ‘쉽게 풀어낸 정치와 전문가들의 예능 분석’(썰전), ‘시골에서 밥해먹고 살기’(삼시세끼)라는 시도를 했다. 지상파가 악녀에만 집착할 때 케이블은 강력범죄자들로 연쇄살인마를 소탕한다는 설정의 <나쁜 녀석들>를 내놓았다.

클릭TV

그러나 아직도 지상파의 ‘혁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2일 첫 방송된 SBS 드라마 <피노키오>는 열혈 사회부 기자들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의도와는 달리 초반부터 이종석과 박신혜의 연애담만 돋보인다. 지상파 예능·드라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창의적 모방으로 청출어람하지도 못한다. 앞서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잘 쫓아가는 것도 아니다. 갈 길만 잃었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