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인터스텔라-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목 인터스텔라

원제 Interstellar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쿠퍼Ι매튜맥커너히, 아멜리아Ι앤 헤서웨이, 브랜든 교수Ι마이클 케인, 머피Ι제시카 차스테인

러닝타임 169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4년 11월 5일

우주여행을 다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애독서였다. 비록 누런 갱지였지만, 컬러로 인쇄된 아름다운 우주 화보는 항상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우주여행에서 시간 패러독스는 익히 알려진 바다.

<코스모스>에 대한 관심은 그가 남긴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콘택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만남>도 흥미롭게 읽었다. <콘택트>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런 언급이다. ‘우주 탐험은 이미 누군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이용한다. 지구보다 선진문명을 구축한 외계의 존재들도 단지 그 길을 이용할 뿐이다.’ 영화 <콘택트>의 중심 주제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다. 무신론적 합리주의자로 여겨지는 칼 세이건이 ‘절대자의 존재’라는 오독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왜일까.

<인터스텔라>는 우주 탐험에 대한 영화다. 배경은 근미래다. 지난 세기, 문명의 ‘대폭발’을 이룬 인류는 이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 공룡의 멸종을 불러왔던 소행성 충돌 따위 때문이 아니다. 인류가 만들어온 문명이 자초한 길이다. 나사(NASA)는 해체되었다. 아폴로호의 달 탐험은 소련과의 냉전경쟁으로 만들어진 사기극으로 판명났다. 경제와 정부가 붕괴되고, 문명은 퇴보했다. 매일 몰아치는 거대한 황사는 지옥도를 만들어낸다. 인류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병충해는 옥수수를 제외한 모든 경작물을 말살시켰다. 극비리에 재결성된 나사는 토성 인근에 웜홀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주 가능한 혹성을 찾는 프로젝트가 가동된다. 지금은 농부로서 삶을 살아가지만 과거 테스트파일럿이자 수리공이었던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조종사로 발탁된다.

영화를 본 소감은 우선 놀랍다. IMAX 촬영이나 우주공간의 표현 등의 기술적 성취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성취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실재’를 그럼직하게 스크린에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재주다. 이 영화에 강하게 깔려 있는 것은 칼 세이건의 유산이다. 쿠퍼를 나사로 이끄는 불가사의한 힘-딸 머피가 ‘유령’이라고 불렀던-의 존재에 대해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해석은 과학의 외피를 쓴 통속적인 신파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콘택트>나 칼 세이건이 타계하기 1년 전 발표한 저서 <유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취한 입장과 같은 포지션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해 상상의 끈을 놓지 않는 회의주의자의 시선이다. 영화는 항성 간에 걸친(inter-stellar) 우주 탐험을 다룬다. 그러면서도 존재의 의미를 묻고 추구하는 장편서사시의 무게를 담고 있다. 야심차게도, 감독이 뛰어넘을 ‘경쟁상대’로 염두에 두고 있는 작품은 여럿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도 그 중 하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퇴역군인 컴퓨터 타스와 케이스의 외양에서 많은 사람들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과 모노리스를 떠올릴 것이다.

터치스크린

존재론적 질문에 대해 영화가 제시하는 답, 다시 말해 시공간을 초월해 전해질 수 있는 유일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 역시 수많은 공상과학 작품들에서 반복해 다뤄지고 있는 주제쯤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디테일하게 풀어낸 감독의 솜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가 왜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면 주말에 손잡고 극장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강력 추천한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훌륭한 영화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