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월호 영향 한국전쟁만큼 커”

진상규명 특위서 활동한 김택수 변호사 인터뷰

결국 시간싸움에서 지고 마는 것 아닐까. 아무래도 시간은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의 편에 서 있는 것 같다. 유가족들이 요구했던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세월호 특별법은 정치권의 협상테이블 바깥에 놓여 있다. 밝혀진 것은 없는데 그만하자는 목소리가 이제는 눈치조차 보지 않고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목소리는 쌓여가는 시간 앞에서 시시각각 고립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11월 1일은 세월호 참사 200일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망각이다. 지난 200일 동안 민변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해왔던 김택수 변호사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러나 김 변호사는 시간의 풍화작용보다 앞선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망각의 앞자리에 ‘첫 마음’을 올려놨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첫날, 둘째 날, 셋째 날… 그때 모든 사람들이 가졌던 첫 마음, 속수무책으로 배가 가라앉고 있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참혹한 무력감과 슬픔, 304명을 살리지 못했던 정부에 대한 분노와 경악.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추스를 수 없었던 그 ‘첫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전쟁의 공포 속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자.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그 경험을 지울 수 있을까. 안 지워진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첫 마음’, 그 트라우마는 언제까지고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첫 마음’은 멈추지 않고 질문을 던질 것이다. 국가란 무엇이고, 우리가 사는 공동체는 어떤 곳인지. 세월호 200일을 보름 앞둔 지난 10월 15일 김택수 변호사를 만났다.

세월호 참사 200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는 어떤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나.
“나는 종종 세월호 참사를 한국전쟁에 비유한다. 국민들 대다수가 공감하는 최대의 재난이다. 모든 재난이 다 아프고 슬프지만, 세월호 참사가 특별한 것은 그 과정 전체를 국민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슬퍼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그 정도의 국민적인 통합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고를 직접 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지켜본 사람들 대부분이 세월호 참사로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지난 200일 동안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특별법 제정을 말해왔고, 국민 여론 또한 여기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적어도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모습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 응답이 특별법 형태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세월호 특별법 초안을 만들 때 기본적인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이 상황을 만든 원인, 그리고 이 상황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방안을 담는 것.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상의 진상규명을 위한 수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진상규명위원회의 한계와 특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법을 설계했다. 조사와 수사가 유기적으로 결합했을 때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일을 맞는 지금 국면에서 정치권은 더 이상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이야기하지 않고, 거기에 대한 여론의 동력도 많이 약화된 상황이다.
“대단히 안타깝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중재하는, 그 시대의 일정한 타협의 산물이다. 법은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표출되고 그것을 대의기구가 수렴해서 만드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 다시는 동일,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국민들의 통합된 의지를 법에 반영하는 게 맞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의지를 가장 절실하게 체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피해자들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 피해자의 참여가 이뤄져야 하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피해자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이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전 국민적 의제를 모으고 피해자를 치유하는 과정을 관리했어야 하는데 너무 미숙했다. 공동체에 대한 공감이 가장 고도로 일어난 재난상황인데, 이를 국민적 통합으로 이끌어가지 못했다. 그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새누리당이 됐든 새정치민주연합이 됐든 시민사회가 됐든 똑같이 그 책임을 나눠서 평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첫 번째로 여당이다. 사실상 아무런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책임 있는 집권여당이라면 오히려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보듬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지하화되어 있는 이권과 유착구조를 개선하려 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오히려 뒤로 빠져 있었다. 여당이 낸 최초의 법안은 피해자 지원과 배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연히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가족 입장에서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좀 더 적극적인 쪽으로 기울어진다. 여당이 충분치 않으니 반사적 효과로 자연스럽게 야당에 의존을 했다. 야당은 국정조사를 보면 대단히 열심히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야당이 ‘유가족은 내편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유가족의 힘을 등에 업은 것처럼 했다. 우쭐했던 것이다. 그보다는 야당이 여당을 향해 ‘먼저 유가족을 보듬으라’는 식으로 스탠스를 가져갔어야 했다. 권력관계로 표현하자면, 세월호와 관련해서는 야당이 ‘내가 여당이다’ 이렇게 나간 셈이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인데, 여당의 소극성과 야당의 오만은 법 협상 자체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정부·여당은 소극적 태도를 넘어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국정조사에 불성실했고, 유가족들 폄하 발언도 나와 논란이 됐다.
“정부·여당 쪽에는 아마도 이런 상황을 관리하는 상당히 세련된 기획이 있을 것이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정부·여당에서는 야권이나 시민사회, 진보세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대체로 다 알고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정보력이 있는 것이다. 반대로 야권이나 진보세력은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전혀 무지하다. ‘내가 옳다’ ‘내가 선이다’라는 생각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상대방은 ‘지피’도 하면서 ‘지기’도 하는데, 야권은 ‘지피’도 ‘지기’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는 한에서는 사실 상당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 ‘3자협의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무엇보다 유가족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여야가 입법을 하더라도 유가족들이 이해관계자로 들어와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고 이를 충분히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변협이 유가족을 대리하고 있으니, 전문가가 들어가 전문가 진술, 공청회도 할 수 있다. 정의당도 독자적인 안을 냈으니 이 과정에 함께 참여할 수도 있다. 이처럼 협상과정을 공개적이고 개방적으로 전 국민들에게 공유가 되도록 했다면 협상이 1차, 2차, 3차까지 가지 않고 훨씬 더 부드럽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밀실에서 협상을 하다 보니 이것이 거듭 거부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온 것이다. 입법과정에서 이해관계자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은 선진외국의 입법에서도 상당히 많다.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한다면 입법배심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국민배심제처럼 국민배심원이 참여하는 입법배심제를 해보자고 전향적으로 제안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민을 여야 누구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흘러왔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금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만의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후 세월호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 앞서 언급한 개방적인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여야 정치인들의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지 않다. 세월호 특별법 2차 합의가 있기 직전에 3자협의체로 문제를 풀자는 제안을 언론에 기고한 적이 있다. 그때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느낌에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이를 거꾸로 해버렸다. 당시 김영오씨가 단식을 하고 있어서 유가족을 살리기 위해 3자협상 테이블을 만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박 전 원내대표가 3자협상을 내걸고서 장외투쟁을 시작해버렸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유가족 살리라고 3자협상을 이야기했는데, 본인 살자고 이를 날려버린 것이다. 여당은 되도록이면 이를 안하려고 하는데 1차 협상을 뒤집는 것에 대한 반성이나 미안하다는 말 없이 덜컥 3자협상 내걸고 장외투쟁을 해버리면 여당이 어떻게 받겠나. 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3자협의체가 유야무야됐다.”

진상규명을 하는 데 핵심이던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뒤로 밀리는 듯 보이면서 어쩔 수 없는 패배감이 있는 것 같다.
“패배감이라기보다는 실패의 구조가 있다고 본다. 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대선에서 패배하고 재·보선에서 패배한 구조와 세월호 특별법의 실패 구조는 거의 다 동일하다. 둘 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다. 그 관심과 참여를 지속시키고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리더십이다. 이 리더십이 개방적이고 또 겸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금방 등을 돌린다. 세월호 특별법도 야당이 유가족에게 ‘내가 누군데 다 해줄게’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겸손하고 개방적으로 갔어야 한다. 얼마든지 전체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사안인데, 그런 실패의 구조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거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또 반성한다고 해도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상황이다. 야당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면서 받은 충격과 상처는 달라졌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애초에 진상규명을 냉소적으로 봤던 사람들이 협상이 계속 실패하면서 말할 거리가 좀 생겼을 뿐이다. 언제든지 올바른 방향으로 합리적인 안이 제시되면 그 ‘첫 마음’은 당연히 다시 모일 것이라고 본다. 지난 200일 과정을 돌이켜보면 시민사회가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도그마화해서 다른 선택의 가능성, 다른 경로의 가능성을 너무 닫아놨던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유가족들이야 전문가들이 그게 없으면 진상규명이 안된다고 하니까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자기신념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합리적인 안을 찾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무엇으로 남을까.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시작됐지만,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10년, 20년, 30년 이상 갈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 우리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국가가 뭔지, 이 사회가 어떤 의미인지. 공동체의 근본을 되짚어보는 철학적인 질문을 일반시민들이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한 지점이다. 이 질문에 적절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어떤 정치집단도 장기적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는 대단히 큰 영향력으로 국민들의 마음속에 오래 자리잡을 것이다.”

<글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