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셀카봉이 바꾼 일상

전대미문의 도구가 등장했다. 셀카봉, 이는 기존의 어떤 일상적인 디카나 휴대폰도 담기 어려웠던 경이로운 화면을 제공한다. 끝에 매달린 카메라를 보면서 젊은 연인들은 포옹하고 가족들은 활짝 웃는다. 셀카봉에 의해 아름다운 나르시즘과 정겨운 가족주의가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었다.

존 싱어 사전트는 다급히 영국으로 건너갔다. 자칫하다가는 끔찍한 스캔들에 휘말려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의 화단에서 사전트의 그림은 당대의 최고 열풍, 즉 인상주의와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그만의 기품 있는 초상화는 특히 파리 사교계의 귀부인과 유한계급의 한량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핍진하게 묘사하는 그림도 꽤 그렸지만 사전트의 주업은 귀부인이나 매력적인 사교계 아가씨들의 전신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사건은 마담 피에르 고트로를 그리면서 벌어졌다. 마담 고트로는 파리 사교계를 매혹의 밤으로 인도한 뮤즈였다. 사전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생결단의 아름다움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사전트는 그녀의 매혹을 치명적인 매혹으로 그리고 싶었다. 도도한 눈빛, 날카로운 유혹의 턱선, 매끈한 몸매, 비현실적인 배경을 그렸다. 이쯤에서 멈췄더라면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전트는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 드레스, 그 어깨끈 하나를 팔 쪽으로 흘러내리듯 그렸다. 그러자 사건이 터졌다. 매혹이 관능이 되자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는 소문도 퍼졌고, 마담 고트로 또한 자신의 육체가 지닌 신비하고도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저속한 스캔들로 추락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겼다. 누군가 협박을 하였고, 그리하여 사전트는 급히 런던으로 몸을 피했다. 그 후 세인의 관심이 줄어들자 사전트는 파리로 돌아와서 그림을 완성했다. 팔까지 드리워진 한 오라기 드레스 끈을 제 자리(?) 즉 오른쪽 어깨 위로 걸치게 그렸다. 그러자 사태는 마무리되었고, 이 작품은 ‘마담 X’라는 제목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대표 콜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도쿄에서 나들이를 나온 가족이 셀카봉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정윤수

내면의 욕망을 매개물 없이 드러낸 19세기
어깨끈 하나가 매혹과 관능의 경계가 되었던 시절, 19세기 후반의 파리는 인간 내면의 욕망을 그 어떤 매개물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시대였다.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성과에 대한 이해, 정치·경제·사회 등의 여러 갈등과 욕망에 대한 예술적 묘사는 그 이전만 해도 어떤 매개물을 동반해야 했다. 신화, 성서, 영웅 등의 매개적 이미지를 통해 당대의 정서와 욕망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는 달라졌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당당히 주권을 획득한 시민들은 스스로의 문화까지 빚어냈다. 그들은 제3의 매개물 없이 직접적으로 그들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욕망을 표현했다. 그 때문에 사전트 같은 화가들이 매혹적인 여자들의 전신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고, 르누아르 같은 화가도 남자들의 시선을 회피하면서 어딘가를 몽롱하게 바라보는 수많은 여성들을 그릴 수 있었다. 한두 세기 전이었다면, 그들은 신화나 성서의 여인들을 대체로 그렸어야 했을 것이다.
오늘날이라면 어떨까.

사전트나 르누아르의 그림실력을 빌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자기 삶의 한순간, 잊혀져서는 안 될 친구와의 나들이, 모처럼 떠나온 가족의 여행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셀카 찍기’다. 셀카는 누가 대신 찍어주는 게 아니라, 직접 스스로를 찍는 것이다. 마담 고트로처럼 사전트의 붓을 빌리는 게 아니라 주머니에서 휴대폰이나 디카를 꺼내면 그만이다. 방금 ‘디카’라고 썼지만, 사실 디카는 셀카 찍기에서 대세를 이루지 못한다.

셀카는 엄밀히 말하여 찍기 위해서 찍는 게 아니라 올리기 위해서 찍는 행위다.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서 찍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해서 찍는 게 셀카다. 찍자마자 블로그에 올리고 SNS로 공유하기 위하여 셔터를 누른다. 찍고, 보정하고, 올리고, 공유하고, 누군가의 ‘좋아요’를 고대하고, 또 누군가의 리트윗이나 댓글을 확인하는 것, 바로 그 댓글에 답글을 잇대어 다는 것, 바로 그것을 위해 찍는다.

‘셀피(Selfie)족’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침대에서, 카페에서, 도서관에서, 한옥마을에서, 대청봉에서, 도쿄에서, 뉴욕에서, 아이슬란드에서 사람들은 찍는다. 찍는 순간 올린다. 올리는 순간부터는 공유의 파장을 흘깃흘깃 파악한다. 자신의 사진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면 거의 실시간으로 접속하여 그 댓글의 ‘좋아요’를 클릭한다. 셀피의 파생어로 위피(Wefie)라는 말도 있다. 셀피 혹은 셀피족이 혼자서 자신의 모습을 찍어서 올리는 것이라면 위피는 여럿이서 함께 어울려 찍고 그 시공간을 동결 건조한 후 곧장 SNS를 통해 땅끝까지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인들이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정윤수

셀카, 셀피, 위피 그리고 셀카봉
여기에 전대미문의 도구가 등장했다. 바로 셀카봉이다. 셀카봉은 일단 여럿이서 여행할 때 필수품이다. 물론 셀카봉은 혼자서 스스로를 기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낯선 사람들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번거롭고 혼자서 팔을 길쭉하게 뻗어서 한쪽 얼굴이 과장된 셀카를 찍는 것도 답답했던 사람으로서는 셀카봉이 요긴하다. 그러나 역시 여럿이 함께하는 사진을 찍을 때 셀카봉은 위력적이다. 일행 중 한 명은 화면에서 늘 빠져 있었다. 그가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대체로 그 사람은 ‘아빠’이거나 ‘남친’이었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게다가 셀카봉은, 이는 직접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기존의 어떤 일상적인 디카나 휴대폰도 담기 어려웠던 경이로운 화면을 제공한다. 온 가족이 셀카봉을 바라보며 한 바퀴 도는 동영상을 찍어보라. 그러면 세상은 온 가족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돈다. 셀카봉을 바닥으로 해놓고 그 위로 펄쩍펄쩍 뛰어보라. 아이들이 창공으로 날아가는 효과가 창출된다. 영화나 사진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는 별일 아닌 듯 싶지만, 셀카봉이라는 이 단순한 도구는 일반인들에게 예전에는 체험할 수 없었던 시각적 충격과 짜릿한 흥미를 선사한다. 그래서 어디서나 셀카봉이 보인다. 그 끝에 매달린 카메라를 보면서 젊은 연인들은 포옹을 하고 가족들은 활짝 웃는다. 셀카봉에 의하여 아름다운 나르시즘과 정겨운 가족주의가 자연스레 일상이 되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