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god 박준형의 ‘복고 예능’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는 아이언맨·배트맨 같은 타 영웅에 비해 무기가 초라하다. 온몸을 최첨단 무기로 휘감는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덜렁 방패 하나만 들고 다닌다. 1940년대를 살던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를 계기로 현대로 온다. 현대생활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을 스마트폰 대신 수첩에 적고, MP3 대신 LP판으로 음악을 듣는데, 이 같은 복고 행보가 캡틴 아메리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냉동됐다 깨어나 수십년을 뛰어넘게 된 캡틴 아메리카 같은 캐릭터가 TV 속에 실제 존재한다. 그룹 god의 박준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요즘 그를 향한 관심과 지지는 <어벤져스2> 예고편보다 더 뜨겁다. god 활동을 마무리하고 미국에서 활동해온 그는 12년 만에 그룹이 재결합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왔다. 10여년의 간극에서 오는 차이가 박준형의 예능 캐릭터로 구축됐다. 박준형은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2000년대 초 방송됐던 <목표달성 토요일> 구호를 돌발적으로 외치고, 직장체험 프로그램인 tvN <오늘부터 출근>에서는 1999년에 폐지된 버스 토큰을 이야기한다.

MBC <라디오스타> 박준형 | MBC제공

지금은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떨어진 ‘냉동인간’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활동 당시만 해도 박준형은 파격의 아이콘이었다. 서른이 넘어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기까지 그는 미국에서 성장했다.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은 당시 가요계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다. H.O.T, S.E.S, 젝스키스, 핑클 같은 다른 그룹은 기획사의 철저한 관리 하에서 활동했다. 박준형은 여배우와의 열애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고 소속사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았다. “나 서른두 살이에요. 오케이?”라며 눈물로 억울함을 토로하던 것도 이때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 그룹의 연애는 절대 해선 안 될 금기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천지개벽’ 수준이다. 이제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글로벌 예능인으로 기획된다. 공개 연애는 물론 결혼도 가능한 시기가 됐다. 그룹 원더걸스의 선예가 지난해 결혼해 엄마가 됐고, 슈퍼주니어 성민은 12월 뮤지컬 배우 김사은과 결혼한다. 연애를 넘어 결혼돌의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 연예계의 변화는 빨랐고, 그 사이 박준형은 복고의 아이콘이 됐다. 파격의 아이콘이 이젠 아날로그 감성을 대표한다.

tvN <오늘부터 출근> 박준형 | tvN 제공

tvN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에서 박준형은 “「X맨」 봐야 한다”, “김종국과 윤은혜가 최고의 커플이다”라는 말로 냉동인간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미 고전이 된 슈퍼마리오 게임을 최신 게임처럼 즐기고, 구형 휴대전화를 “이거 TV도 된다”며 신기해했다. 독수리 타법으로 미니홈피 일촌들에게 방송 출연을 홍보했고, 방문자가 한 명도 없자 “도토리를 선물 안 해서 애들이 삐쳤다”고 말한다. SBS <룸메이트>에서는 “옛날에 500원 지폐에 거북선이 있었다”며 “할머니가 자주 줬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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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god로 한창 활동하던 때는 미국에서 온 튀는 연예인이었지만, 지금은 되레 아날로그 아이콘이 됐다. 젊은이들에게는 신기함을, 3040 세대에게는 추억을 준다. 박준형은 1990년대 감성과 문화를 안고 있지만 미국의 쿨함과 자유분방함도 가지고 있다. 신세대들이 그를 ‘꼰대’로 보지 않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40대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박준형은 잊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을 꺼내주는 일종의 <응답하라 1994> 같은 존재가 됐다. 올드한 것은 진부하지만, 복고는 유행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