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매력

역사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명량해전 속 이순신 장군의 전쟁 이야기가 스크린을 점령하고, 영조의 반정이 안방극장을 장악하며 세간의 화제를 낳는다. 심지어 시즌마다 새로운 장희빈, 새로운 한명회가 등장하지만 여전히 사극은 손꼽히는 인기 콘텐츠로 인구에 회자된다.

무대예술인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소재로 글로벌한 흥행과 인기를 누린 작품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천재 음악가 이야기를 그린 <모차르트>,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운의 황녀가 주인공인 <엘리자벳>이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민족의 영웅 안중근의 이야기를 담은 <영웅> 등이 있다. 글로벌한 규모에서도 적지 않다. 악덕한 언론재벌 퓰리처에 대항했던 뉴욕의 신문배달부들이 등장하는 디즈니산 뮤지컬 <뉴시스>,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남성 그룹 포 시즌스의 사연과 뒷이야기를 그린 <저지 보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스크린을 통해 공연실황이 상영 중인 뮤지컬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근작 프랑스 뮤지컬로 인기를 누린 바 있는 흥행작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은 바로 이런 사례에 부합될 만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치는 역사를 배경으로 귀족의 딸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이들을 돌봐주던 여인 올림프가 부당하게 자신의 땅을 뺏긴 후 혁명의 전사가 된 호낭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다. 애절한 사연과 안타까운 사랑은 결국 혁명군의 승리와 함께 명을 달리한 호낭의 죽음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며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뮤지컬이 흥미로운 것은 물론 올림프와 호낭의 슬픈 사랑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대적 배경을 활용한 무대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 예를 들어 로베스피에르와 카미유 데물랭, 조르주 당통, 그리고 누구보다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등장한다. 이들이 크고 작은 이야기에 연루되며 정말 그랬을 법한 역사적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묘미를 창출해낸다.

지금까지 프랑스 뮤지컬들이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흥행공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도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의 인기요인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여러 프랑스 뮤지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대사 없이 노래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송 스루’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영미권 작품들과 달리 구체적이기보다는 시적이고, 직설적이기보다는 은유적이며 함축적인 노랫말 탓에 작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일단 기본적인 뼈대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바탕에 있다면 보고 들을수록 감칠맛을 더하는 프랑스 뮤지컬 특유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수작이라 평가할 만하다.

국내에서 스크린을 통해 공연실황이 상영 중인 뮤지컬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프랑스 뮤지컬의 인기는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이 있다.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된 때가 2000년 전후였다는 점이 그렇다.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뮤지컬은 익숙하지 않은 무대예술의 한 분야에 불과했다. 오페레타를 통해 대중적인 음악극을 시작한 역사 속 주역의 한 축이었지만, 오히려 뮤지컬이 장르적 정체성을 확고히 한 것은 영미권 시장이었고, 프랑스 뮤지컬은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슬그머니 그 왕관을 미뤄놓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부잣집은 망해도 3대’쯤은 끄떡없나 보다.

문화내시경

최근 프랑스 뮤지컬이 보여주는 가파른 성장세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창작에 대한 열정과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특히 그렇다. 기회가 되면 영상으로라도 꼭 감상하라고 권해보고 싶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