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자이니치와 우치난츄의 눈물

역발상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내 소수자인 자이니치와 우치난츄는 퇴행하는 일본의 민주주의를 견제하고 때로는 재건하는 ‘가능성의 중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울의 한 극장에서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를 봤다. 영화에는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럭비부가 하나조노 구장에서 열리는 전국 고교 럭비대회에 참가해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일본 내에서 자이니치(在日)는 이방인이다. 식민지와 분단상황 때문에 한반도로 귀국하지도, 또 일본으로 귀화하지도 않은 채 일본 사회 안에서 구조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을 동포들의 모습을 보는 일이 애틋하고 가슴 아팠다.

현재 일본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사카시를 포함한 전국에서 민족학교에 대한 고교 무상화 조치 배제로 차별을 가하고 있다. 교토에서는 조선초급학교에 극우단체인 재특회가 난입해 학생과 학부모들을 경악하게 한 바 있으며, 이 밖에도 일본인 납치문제를 들며 벌이는 유무형의 자이니치 차별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 학생들의 전국대회 도전을 그린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제공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은 일본 안의 또 다른 마이너리티 그룹인 오키나와인, 아이누인, 피차별 부락민에 대한 차별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에서 이러한 차별은 지속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가령 자이니치의 경우 제3국인에 대한 차별일 뿐이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설사 자이니치들이 일본인으로 귀화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출신이 알려지면 더 큰 차별이 등장했던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차이’를 ‘구조적 차별’로 증폭시키는 곳을 선진사회로 보기는 어렵다. 구조적 차별이 끝없이 반복되는 한 그것은 언제든 공동체의 단결을 이유로 소수의 희생과 폭력을 재현하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반복되는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
현재로부터 91년 전인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전역에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다.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조선인은 총 13만6557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3000~7000명의 조선인이 관헌과 자경단에 의해 학살당했다. 조선인 학살과정에서 다수의 오키나와인들이 학살당하거나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례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인을 학살하기 위해 일본인들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어 탁음(濁音)을 발음하라 했고, 발음이 이상하면 조선인이라 간주해 살해했다. 당시 오키나와 현민 역시 생계를 위해 일본 본토로 노동이민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들 역시 일본어에 서툴러 조선인으로 오인받아 학살당했던 것이다.

조선인이나 오키나와인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아이누인들 역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훗카이도 강점 당시 둔전병들에 의해 학살당하거나 강제노역과 채식 강요로 다수가 아사한 바 있다. 당시 아이누인들의 학살과 훗카이도 강점의 전략을 세웠던 것은 미국인 참모들이었다. 이들은 서부개척 당시의 인디언 학살과 동일한 방법으로 아이누인을 제압할 것을 일본의 둔전병들에게 지시했다. 그 결과 오늘의 아이누인들은 단지 수만명이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오키나와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은 오키나와 전쟁 과정에서의 생명의 희생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구조적 차별로 나타난 바 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속된 이후에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 단 1개의 대학도 설립하지 않았다. 오키나와인들은 식민지인 조선이나 대만에도 제국대학을 설립한 정부가 왜 오키나와에는 대학을 설립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뿐만 아니라 1945년 일본의 패전 때까지 오키나와현의 지사는 일본인들이 독식했다. 오키나와는 일본이라며 동조동근론을 펼쳤던 일본인들의 이중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재의 자이니치 코리안과 우치난츄(오키나와인)를 합치면 약 200만명에 달한다. 이들 200만명은 일본 전체 인구의 1.5% 정도에 해당되는 양적 소수자이다. 세계를 둘러보면 인구 200만명 이하의 독립국가는 꽤 많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인구 3만명 정도에 불과한 주권국가 역시 지구상에는 존재한다. 이들을 소수자라 일컫는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이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지속하고 있는 ‘구조적 차별’ 때문이다.

그러나 역발상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 내 소수자인 자이니치와 우치난츄는 퇴행하는 일본의 민주주의를 견제하고 때로는 재건하는 ‘가능성의 중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이니치들이 역사 속에서 벌인 자립과 자치를 향한 거대한 실천과 운동은 일본 안에서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진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키나와인들이 역사적 비극 속에서 그 좌표가 흔들려 왔으면서도, 1990년대 이후 평화와 자치, 그리고 자립을 향해서 발신하는 메시지들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들의 매우 강렬한 평화주의 열망에 감동하게 만들고 있다.

고교야구에서 오키나와는 왜 강한가
<60만번의 트라이>에서 오사카조고가 전국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장면을 보면서, 2010년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린 고시엔 구장에서 오키나와의 코난고가 우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코난고 응원단은 <하이사이 오지상>이라는 오키나와 민요를 불렀다. 오키나와 민요가 일본 본도에서 뜨겁게 불려지는 가운데 ‘오키나와의 눈물’은 기어이 승리의 눈물로 폭발했다.

나는 그런 눈물을 하나조노에서 뛰고 있는 오사카조고 선수들의 얼굴에서 발견하고, 코난고 학생들의 눈물과 어쩔 수 없이 오버랩되는 연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함께 영화를 보았던 아내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들의 눈물 앞에서 나는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자이니치나 우치난츄의 차별을 넘어선 지구적 평등, 보편적 평등이라는 ‘인간의 권리’라는 말이 된다. 이 인간의 권리는 다수자와 소수자의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서만 현실화되는 존엄이다.

일본인들은 왜 오키나와가 고교야구에 강한가, 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동시에 자이니치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왜 스포츠와 연예계에서 맹활약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답은 명료하다. 만일 일본 사회 안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그토록 노골적이지 않았다면, 자이니치와 우치난츄는 평범한 일본인이 그렇듯 여러 분야에서 평범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그러나 이 평범함을 불가능하게 하는 차별이 존재하는 한 역시 많은 소수자들은 스포츠와 연예계에서 그들의 눈물을 승화시킬 수밖에 없다. <60만번의 트라이>를 보면서 나는 이 선수들과 관객들의 함성에, 오늘도 신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우치난츄들의 함성소리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눈물이 멈춰지길 기대한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