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금 스토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증세·신설의 우여곡절 역사… 10년 민주정부 막 내리게 한 종합부동산세

박근혜 정부가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를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증세논쟁이 거세다. 정부는 건강을 위해, 혹은 20년 만의 세금인상을 통한 세금 정상화라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편법증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어느 시대든 증세는 거센 논쟁을 불러왔다. 심지어는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독립시키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4세가 파탄낸 왕궁의 재정을 채우기 위해 서민증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영국이 미국에서 수출하는 차(茶)에 과도한 세금을 매긴 것이 시발이었다. 미국인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영국배에 있던 차를 내버린 보스턴 차 사건이 촉매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새로운 세금 도입은 늘 큰 논란이 됐다. 최경환 경제팀은 ‘기업소득환류세제’ ‘배당소득증대세제’ ‘근로소득증대세제’라는 새로운 세목을 만들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세율 인상 혹은 세금 도입을 둘러싼 뒷이야기들을 짚어본다.

1978년 국회의원 선거 유세현장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8년 국회의원 선거 유세현장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7년 아시아 첫 부가가치세 도입
노무현 정부 당시 도입된 종합부동산세와 함께 가장 반발이 심했던 세금이 부가가치세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7년 7월 1일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아시아 최초였고, 세계 23번째였다. 상품에 붙는 부가가치세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한국이 부가가치세를 처음 고려한 것은 1971년이다. 부가가치세 도입 전에 간접세가 11개나 달해 혼란이 많았다. 1972년 외국의 저명한 전문가들을 초빙해 한국 도입에 대한 자문을 받기 시작했다. 1976년 6월에는 부가가치세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분석했다. 영업세와 물품세 등이 부가가치세로 대체되면 물가에 큰 영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1977년 부가가치세를 전격 도입했다.

하지만 반발은 극심했다. 도입 당시 세율은 10%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이었다. 이 세율은 더 이상 손대지 못한 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부가가치세 도입 다음해인 1978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이 패했다. 부정부패와 인권유린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부가가치세 인상에 따른 서민들의 민심 이반이 결정적이었다. 1979년에는 부마항쟁이 발생했다. 부산과 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은 유신 철폐와 함께 “부가가치세 철폐”를 외쳐댔다.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은 일본에서도 ‘정권의 무덤’으로 통한다. 일본은 1952년과 1953년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려다 국민들의 반발로 좌절됐다. 1980년 다시 5% 소비세 도입이 추진됐다. 1989년 3%로 수정된 뒤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8년 뒤인 1997년 세율을 3%에서 5%로 올렸다. 2010년 나오토 총리는 소비세 10% 인상을 언급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은 참패한다. 2014년 4월 아베 총리는 소비세율을 8%로 올렸다. 내년 10월부터는 10%까지 올릴 방침이다. 하지만 소비세 인상 이후 일본의 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내년 10월 추가 세율 인상이 쉽지 않아 보인다.

아시아에서 부가가치세가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대만(17%)·필리핀·인도(12%) 정도다. 중국(5%)·싱가포르(8%)·태국(7%)은 한국보다 낮다.

소비세를 처음 도입한 나라는 프랑스다. 1954년이다. 영국은 1973년 도입했다. 부가가치세는 판매세 등 불완전한 간접세를 대체하기 위해 처음 마련됐다. 그러다 1980년대 일본·호주·캐나다 등이 경제구조개혁과 재정건전화를 위해 도입했다. 1990년에는 동유럽이 대거 소비세를 도입하는데, 구소련 연방에서 나와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금의 천국, 미국은 소비세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소비세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2006년 1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주민들이 분당구청 회의실에서 종합부동산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6년 12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주민들이 분당구청 회의실에서 종합부동산세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부동산 투기 억제 위해 양도세 도입
2005년 재정경제부의 모 차관은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 후반 사무관 시절부터 꿈꿔왔던 일을 이제야 이뤘습니다. 20년 걸렸네요.” 그가 말한 ‘꿈꿔왔던 일’은 보유세 강화였다. 역대 정권은 부동산세와 관련,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보유세를 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시가 대비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0.17~0.52%로 미국 1.5~1.6%, 일본 1%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10억원짜리 집보다 3000만원짜리 자동차세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보유세는 기형적이었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노무현 정부가 꺼낸 카드가 종합부동산세였다.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에 대한 공갈이자 엄포”라고 했고, 보수언론은 “주택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 세금 폭격” “6억이 넘는 집을 가진 죄”라고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 도입에 성공했지만 2007년 정권을 잃는 결정적 한방이 됐다.

종합부동산세는 특정 가격이 넘는 부동산을 갖고 있을 경우 부과되는 누진세다. 도입 당시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 부과됐다. 2006년 부동산 가격이 꺾일 기미가 없자 개인 6억원 이상 주택에서 세대별 합산 6억원으로 강화됐다.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정책이 종부세 완화였다.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진 게 강남 집 한 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몇백만원이나 되는 세금을 물릴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1가구 1주택은 9억원까지 종부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고, 부부합산 과세도 개인 과세로 바뀌며 대폭 완화됐다.

한국의 소득세는 1949년 7월 15일 최초로 제정됐다. 일제시대와 미군정 때부터 이어오던 소득세제를 반영한 것이지만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과세체계를 갖춘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동안 법인세는 법인소득세라 불리며 소득세의 하나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때부터 법인세가 따로 독립돼 ‘개인소득세’ 개념이 된다.

소득세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국가는 영국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전비를 조달하기 위해 1799년 도입했다. 미국은 남북전쟁(1862~1871년) 때 일시적으로 도입했다가 1913년 항구적인 세제로 만들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940년 가장 먼저 도입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비 마련이 목적이었다.

소득세와 함께 긴 역사를 가진 세목은 법인세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기업들이 탄생하면서 부과되기 시작했다. 1909년 미국은 4% 단일세율로 법인세를 도입했다. 주요 국가들이 법인세를 도입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영국은 1947년, 프랑스는 1948년 도입했다.

한국은 일제시대인 1916년 법인소득에 대한 과세가 시작됐다. 양도세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시행됐다. 한국전쟁 전비 마련이 목적으로 ‘조세특례제한법’에 담겼다. 그러다 1960년 폐지됐다. 양도세를 되살린 것은 부동산투기였다. 1967년 부동산투기 억제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해 ‘부동산투기 억제세’가 신설됐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되고 정부 주도 경제발전이 급격히 이뤄지면서 부동산투기가 성행한 것이 원인이 됐다. 과세대상은 서울, 부산과 그 인접지역 토지였다. 1975년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목적으로 양도소득세가 도입됐다. 이후 부동산투기 억제세를 흡수하면서 과세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