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성장통’ 앓지 않게 차분히 지켜보자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메시와 함께 뛰는 꿈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또 “축구하는 사람으로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다”며 오늘도 달린다.

지난 9월 14일 한국과 일본의 아시아축구연맹 16세 이하(U-16) 챔피언십 8강전이 열린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 후반 2분, 신장 173㎝의 작은 소년이 컴퓨터 게임을 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하프라인 전부터 60m 드리블을 치고 들어가 수비수 3명과 골키퍼까지 제치고 ‘원더 골’을 터트렸다. 경기 전 “일본 정도는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말한 이 소년은 관중석을 향해 귀를 대는 세리머니를 펼치는 여유까지 보였다.

한국은 일본을 2-0으로 꺾고 4강에 올라 내년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고, 승리 주역 이승우(16·바르셀로나 후베닐A)를 향해 찬사가 쏟아졌다.

이승우(오른쪽)가 9월 14일 태국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아시아축구연맹 16세 이하(U-16) 챔피언십 8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아시아축구연맹 제공

빠른 드리블과 킬러 본능 두루 갖춰
스페인 일간지 <문도 데포르티보>는 “이승우가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한 뒤 골을 넣었다”고 극찬했다. 일본 수비수 도미야스 다케히로(16)는 일본 매체 <사커킹>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수비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파울이 아니면 막을 수 없었다”고 완패를 인정했다. 브라질 <글로부>도 “이승우의 골은 1986년 디에고 마라도나(54·아르헨티나)가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넣은 골과 유사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승우는 17일 시리아와의 4강전에서는 1골4도움을 올리며 7-1 대승을 이끌었다. 비록 20일 북한과 결승에서 1-2로 졌지만, 이번 대회 주인공은 단연 이승우였다. 이승우는 결승전 내내 북한 선수들의 거친 파울에 묶여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대회 득점왕(5골)과 최우수선수(MVP)를 석권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한국 차세대 공격수 손흥민(22·레버쿠젠)에 이어 또 다른 ‘슈퍼 탤런트’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Lo mas parecido a Messi.’(메시와 가장 닮았다)

스페인 스포츠신문 <문도 데포르티보>가 지난해 1월 이승우를 조명한 기사에 붙인 제목이다. 당시 이승우는 스페인 프로축구 FC바르셀로나 15세 이하 유소년팀 카데테B(15세) 소속이었다. 이 매체는 “이승우는 제2의 메시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선수 중 메시와 가장 닮은 선수”라고 극찬했다.

리오넬 메시(27·바르셀로나)를 배출한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후베닐A(17~19세팀) 소속인 이승우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2010년 서울 대동초등학교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다논 네이션스컵에서 득점왕(12골)을 차지한 뒤 이듬해 바르셀로나 입단 꿈을 이뤘다. 그 해 세계 유스클럽선수권 우승과 MVP를 석권했고, 바르셀로나 인판틸A(13∼14세 이하)에서는 38골·18도움을 기록했다.

이승우는 메시와 플레이 스타일이 흡사하다. 메시(169㎝)처럼 단신이지만 빠른 발과 드리블, 압박 대처능력, 킬러 본능을 두루 갖췄다. 그는 메시처럼 ‘가짜 9번’, 즉 위장 공격수로서 제로톱 전술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이승우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롤모델인 메시를 보며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이승우는 “유소년 선수들에겐 별도의 카드가 나와 바르셀로나 1군 홈경기를 볼 수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와 레알 마드리드전은 꼭 찾아가서 본다”며 “메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한다. 메시처럼 완벽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메시와 함께 뛰는 꿈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처음에는 스페인어를 못해 동료들과 친해지지 못했지만, 하루에 6~8시간 스페인어를 공부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니 패스가 오기 시작했다. 매년 연령대 장벽을 깨고 높은 단계로 월반했다. 지난해 2월 FIFA가 ‘18세 미만 선수 이적 금지’ 조항을 엄격 적용해 바르셀로나 소속 공식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비공식 경기를 통해 계속해서 천재성을 입증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지난 3월 바르셀로나와 5년 재계약을 맺었다. 바르셀로나 유스팀 최종 단계인 후베닐A(17~19세팀)에 지난 7월 승격했다.

특유의 당당함은 자신감의 표출
일각에서는 “이승우가 실력은 뛰어나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승우가 U-16 챔피언십 도중 무심코 욕설을 내뱉는 장면, 경기가 맘대로 풀리지 않을 때 신경질 내는 장면 등이 회자됐다.

하지만 이승우는 북한과 결승전에서 강철 멘탈을 선보이며 기우를 불식시켰다. 북한 선수들은 이승우가 공을 잡을 때마다 거칠게 달려들었다. 대놓고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우는 흥분하지 않았다. 하프타임 때는 주전 선수 중 가장 늦게까지 복도에 남아 후보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그라운드로 나갔다.

이승우는 북한전이 끝난 뒤 관련 지적에 대해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며 “난 아직 어리고 배울 게 많다”고 겸손해했다. ‘리틀 메시’ 별명에 대해서도 “어떤 선수와 닮았다고 하는 게 과분하다”며 “차근차근 가르침을 받아서 제2의 누군가가 아닌 제1의 이승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진철 U-16 대표팀 감독은 “이승우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자신감의 표출인 것 같다”고 제자를 감쌌다. 물론 특유의 당당함은 여전했다. 이승우는 “아시아에서 우리가 최고 수준의 팀이라고 자부한다”며 “내년 10월 칠레 U-17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라고 다부지게 말했다.

현역 시절 ‘판타지 스타’라 불린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이승우에 대해 “하이라이트밖에 못 봤지만 좋은 선수가 나온 것 같다. 지금 가진 재능을 성인까지 유지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안 위원은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 언론이 실력 이상으로 띄워주면 선수가 착각할 수 있다. 잘하면 잘했다고, 못하면 못했다고 냉정하게 말해줘야 한다”며 “그 나이 때에는 칭찬보다 욕을 많이 먹는 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욕을 먹어야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발전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스페인을 들썩이게 했지만 바르셀로나에 정착하지 못한 선수들은 많다. 지오바니 도스 산토스(24·멕시코), 보얀 크르키치(23·스페인)가 대표적이다. 16세 천재소년 이승우의 성인 A대표팀 발탁론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지만 시기상조다. 울리 슈틸리케 신임 한국 A대표팀 감독은 “아직 이승우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 언급하는 게 시기상조라고 본다”며 “이승우는 지금 성장에 있어 중요한 단계다. 지켜볼 예정이다. 축구는 인생과 같다.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오늘도 달린다. 그는 “바르셀로나 1군에서 뛰는 게 내 꿈이다. 3~4년 안에 이뤄야 한다. 더 발전해서 빨리 올라가고 싶다”고 말했다. A대표팀 발탁에 대해 “한국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축구하는 사람으로서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싶다”며 “준비를 하고 있다.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