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말과 음악의 향연 <카발리아>

말(馬)이 소재인 무대는 오래 전부터 인기를 누려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기 잘하는 젊은 남자배우의 광기 어린 무대가 유명한 <에쿠우스>가 대표적이다. 신성하고 경이로운 존재로서의 말의 모습은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영국에서 제작한 <워 호스>도 대표적인 글로벌 흥행 사례다. 진짜 말은 아니지만 실감나는 인형으로 인구에 회자됐던 경우다.

흔치는 않지만, 정말 무대로 말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한여름이면 이탈리아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터에서 열리는 야외 오페라 가운데, 특히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서 2막의 유명한 개선 행진곡이 등장할 때면 정말 말을 탄 장군과 기수들이 등장해 객석의 탄성을 자아낸다. 실감나는 대형 무대의 볼거리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맘껏 말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만끽하고 싶다면 캐나다산 아트 서커스를 추천할 만하다. 언론으로부터 ‘호스 발레’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던 작품인 <카발리아>다. 물론 말과 함께 움직이는 기수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발레를 연상케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트 서커스 <카발리아>

<카발리아>가 글로벌 공연가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태양의 서커스단의 4명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로만 라투렐이 특별히 말을 좋아하는 마음을 아트 서커스의 형식에 담아 표현하고자 구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텐트 극장을 활용하는 것은 여느 캐나다산 공연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규모면에서는 비교가 불가하다. 우선 텐트 개수 등 기본적인 시설 환경이 훨씬 대규모일 뿐 아니라 메인 무대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말이 등장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생활하며 훈련하는 마굿간까지 함께 동행해야 하는 탓이다.

온갖 소음과 박수갈채를 쏟아내는 관객들을 지근거리에 둔 채, 격렬한 리듬과 화려한 선율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예민한 말과 함께 여러 묘기를 펼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공연의 참가자들은 오랜 시간 말과 함께 생활하며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교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이 4~5년간 혹은 그 이상 동고동락한다. 기수의 작은 몸짓이나 소리만으로도 말과의 소통을 이뤄내는 이유다.

<카발리아>는 기존의 전통적인 서커스와는 거리가 있다. 말이 보여주는 묘기보다 인간과의 교감을 전면에 내세운 독특한 형식적 특성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말 위에서 보여주는 곡예사의 덤블링이나 인간 탑을 만드는 아크로바트 퍼포먼스보다 깊은 신뢰를 나누는 조련사와 말 사이의 차분한 시선의 교환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배경이다.

아트 서커스 <카발리아>

캐나다산 아트 서커스는 빛바랜 대중문화 콘텐츠로 어떻게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지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서커스의 형식을 빌려와 새롭게 현대적인 감각과 안목, 형형색색의 조명과 의상, 세련된 이미지로 재구성해낸다. <카발리아>를 통해 만나는 말들의 무대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묘기 수준을 넘어 한 편의 회화 같은 이미지를 완성해내는 몽환적인 무대 정경이 멋진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문화내시경

말이 익숙하지 않은 국내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체험이 될 것 같다. 연말에 있을 서울에서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