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야당이 읽어야 할 소설

윤영수 선생의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귀가도’ 문학동네 2011)은 가구공장에서 배달일 하는 유순봉씨 집에 기천웅이라는 남자가 갑자기 들어와 살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찾아온 남자는 일면식도 없고, 먼 친척도 아니다. 퇴근해서 들어온 순봉은 어느 낯선 남자가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을 본다. 순봉은 아내의 먼 친척이겠거니 생각하고, 아내는 단칸방을 차지하고 앉은 그가 남편이 아는 사람이겠거니 한다. 부부는 서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지만 집에서 내쫓지 않는다. 남의 집에 잘못 찾아왔거나, 밖이 추워 들어온 것일 테니 때가 되면 가겠지, 할 뿐이다.

그날 이후 3년하고 두 달이 지난 며칠의 일을 소설은 적고 있다. 남자는 3년 넘게 남의 집에 무위도식하며 주인 행세를 하고, 순봉과 가족들은 그간 단칸방에 얹혀 사는 신세로 전락한다. 순봉이 벌어오는 월급을 가로채기도 하고 부부의 어린 딸을 추행하기까지 한다. 소설은 순봉씨 가족이 왜 낯선 사람을 쫓아내지 않는가,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 쫓아내지 못할 이유도 딱히 찾을 수 없다. 그러지 못하는 순봉씨를 이해하기 힘들지만, 소설 안에서의 현실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크다. 소설은 그저 서술자의 감정을 배재한 채 상황을 보여주기만 한다.

반전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순봉의 기이한 사연을 접한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온 것이다. 취재 나온 사람들은 점점 더 어려움에 처해지는 순봉씨 가족을 돕기는커녕 방송에 다이내믹한 상황을 내보내기 위해 남자가 어떤 폭력적인 일을 저지르기를 기다리기만 한다. 급기야 소설의 절정은 순봉이 용기를 내어 남자에게 집에서 나갈 것을 겨우 요구하는 장면이다. 소소하기만한 이 결말이 이상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정당하기만 한 순봉의 요구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말은 그렇게 하고서도 갈 곳 없을지 모르는 남자를 쫓아내는 것에 순봉은 자책감을 가진다. 낭패뿐이다.

소설은 남의 집에 들어와 집주인 행세를 하며 살고 있는 기천웅이라는 인물을 집에서 쫓아내는 과정과, 타인의 비루한 현실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송의 속물적 이중성의 묘한 대비를 통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주된 이야기다.

글을 쓰기 위해 소설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이 이야기를 현재의 어떤 상황에 대비시켜 글을 풀어야 할지 난감해졌다. 비유를 할 만한 상황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고 많아서였다.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소설은 한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데, 비단 이 모티브로 사용된 이야기가 특이하고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낯선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살고 있는 상황이 우리 사회와 역사 안에 드문 일이던가 말이다. 도둑을 쫓아내지 않고 품고 사는 일이 한두 해 특이한 일이던가. 우리의 월급을 가로채고 우리 아이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자들이 한둘인가 말이다.

우리는 매순간 이 답답한 현실의 이야기 안에 살고 있다. 집주인인 우리의 잘못이 크다. 가슴을 치며 억울한지도 모르고, 자기 집을 빼앗기고서도 혹시 내 집에서 나가면 추운 날씨에 갈 곳 없을지 모르는 낯선 이들을 걱정하는 우리의 잘못이 전부다.

백가흠의 눈

그래서 소심하게 소소한 반전을 주자면, 이번엔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을 새정치민주연합도 읽어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