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환경‘운동’ 지킨 21살 ‘싱크탱크’

환경연합 시민환경연구소, 환경 관련법 토대 마련ㆍ 환경정책 견인 등 민간연구소로서 역할 톡톡

갑자기 내린 비로 일정이 틀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환경연합 사무실 내로 행사장이 옮겨졌다.

시민환경연구소. 올해로 창립 21주년이다. 홈페이지의 연혁표를 보면 환경연합(1993년 4월)보다 두 달 먼저(1993년 2월) 설립되었다. 이날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원년 멤버’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창립 당시의 회상이 흘러나왔다. “제가 고창환 교수, 최열 대표와 논의할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환경운동을 하지만 전문성이 없으니 전문성을 키우자, 처음 생각할 때는 자연과학적인 연구소를 생각했어요. 이를테면 수질 테스트를 하더라도 자연과학적 실험을 통해 진실을 밝히자,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었습니다.”(이시재 환경연합 공동대표)

9월 1일 열린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이·취임식에서 참석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말을 받았다. “NGO가 환경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좀 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운동단체는 운동성을 가져야지, 외국에 있는 헤리티지나 브루킹스 같은 민간 싱크탱크는 튼튼한 재정과 개인 기부가 뒷받침이 되는데 한국은 너무 미약하지 않느냐는 식의 우려가 많았습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가 지난 6년간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을 책임졌었다. 이날 열린 행사는 새로 연구소 소장을 맡은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과의 이·취임식 자리였다. 안병옥 소장은 기후변화행동연구소를 만들기 전 환경연합 사무총장과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을 맡았었다.

시민환경연구소는 환경연합 부설기관이지만 민간연구기관으로 똑 부러진 역할을 해왔다. 장재연 아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열리는 회의에 들어갔더니 연구소가 만든 자료를 바탕으로 브리핑을 하더라는 일화를 전했다. 계속되는 장 교수의 말. “대기나 정유차, 폐기물 등 환경 관련 초창기 법을 만들 때 연구소의 작업들이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사실 20년이나 민간연구소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요.”

박창근 교수가 소장을 맡은 날은 2008년 9월 1일. 이명박 정부 초기다. 이임사를 한 박창근 교수가 회고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촛불단체가 정부 용역을 수행하면 애를 먹었을 때입니다. 그때 취임사가 기억납니다. 연구소의 연구역량을 강화시키겠다, 안정적인 연구과제를 확보하겠다, 연구원 처우 개선하겠다는 아주 ‘상투적인’ 과제를 제시했는데,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연구원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연구해야 할 시간에 ‘4대강에 파묻혀서 돌아다닌 것’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연구소에 주어진 과제는 많다. 안병옥 신임 소장은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세월호 문제를 보면서 원칙과 상식, 약자와 피해자를 생각하는 공감의식이 우리 사회에 있나 생각하게 됩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최근 온실가스 감축 대폭 후퇴나 규제완화 문제를 보면 정말 힘든 과제를 우리가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싸우는 것은 환경운동가로서는 숙명입니다. 싸울수록 자신은 피폐해지는데, 그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도 치유되고 이웃이나 전 사회가 치유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과제입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