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광장’다워지는 광화문광장

비록 ‘국가주의 스펙터클’로 조성된 광화문광장이지만, 세월호 유가족과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광장답게 활용하고 있었다. 농성장 한편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분수대에서는 아이들이 잘 놀고 있었다. 광장은 그렇게 넉넉한 그릇이어야 한다.

아주 고약한 뉴스를 보았다. 9월 11일, mbc 뉴스데스크 ‘집중취재’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광장 농성이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농성으로 드러났다”고 했다. 왜 농성을 하고 있는가, 왜 단식을 하고 있는가, 왜 두 달이 넘도록 끼니도 거른 채 초췌한 모습으로 낮밤을 견디고 있는가, 왜 한여름 땡볕을 견뎌야 하며 왜 추석 한가위에도 차디찬 바닥에서 쓰라린 시간을 견뎌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엄두도 못내면서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농성”이라는 점만 부각시켰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9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모습 | 정윤수

‘농성’만 부각시킨 mbc뉴스데스크
참사 이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국가 개조’라는 말까지 나왔음에도 청와대는 철옹성을 쌓은 채 묵묵부답이며, 무슨 까닭인지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던 국무총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해피아’, ‘관피아’, ‘적폐 엄단’, ‘척결 해체’처럼 반공 웅변대회 연사들이나 목청껏 외칠 듯한 무시무시한 말들만 난무했다.

두 차례의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를 치르고 여름휴가와 기나긴 추석 연휴를 다 보낸 마당에도 여야의 협상은 밀실의 야합처럼 제자리걸음인 마당에 유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 있겠는가. 결국 곡기를 끊은 채 차디찬 바닥에서 버티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눈물도 말라 버렸다. mbc 뉴스는 이러한 ‘사태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농성’ 그 자체만을 핀셋으로 콕 뽑아내서 그것이 ‘불법’이라고 지탄하고 있으니, 이런 고약한 뉴스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호 유가족 때문에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추석 민심 전략에 재빨리 부응한 뉴스라는 혐의마저 짙다.

이 뉴스가 고약한 또 하나의 이유는 ‘국가 재난’을 당한 유가족들을 ‘국가주의’로 위협한다는 점이다. 다급한 음향효과에 이어 앵커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법 농성’이라고 강조한다. 기자의 리포트가 이어진다. 국가주의적인 공간 묘사로부터 시작한다. “청와대와 정부청사, 미국 대사관 등이 인접해 있는 수도 서울의 심장”에서 유가족들이 두 달 넘게 “불법 농성”을 하고 있다고 힘줘 말한다. 뉴스 화면 또한 청와대와 미국 대사관을 먼저 보여준다.

광장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표현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시민들의 다양한 의사 표현이 가능한 광장에서 유가족들이 두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mbc 뉴스는 철저히 국가주의적으로 접근한다. 이렇게 구성된 멘트와 이미지의 조합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사태 전개를 철저히 국가주의 관점에서만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화문광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국가 권력적 차원에서 저돌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매우 고약한 뉴스다.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문화회관 돌계단에 노란리본이 그려져 있다. | 정윤수

광장이 두려운 자들의 고약한 매도
광장이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가 그 기원이다. 도심의 한복판에 널찍하게 조성된 공간으로, 그 주변으로 사원, 시장, 관청 등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유럽의 대도시들은 크고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프랑코 만쿠조의 저서 <광장>을 보면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이자 때로는 권력이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실천하는 장이었고, 동시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의사를 표현하는 무대였다.

광장은 모두의 소유이자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마치 넉넉하게 비어 있는 그릇과 같은 공간이다. 그 그릇에 때로는 문화적 욕망이 담기기도 하고, 정치적 열정이 담기기도 하고, 사회적 울분이 담기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러한 욕망과 열정과 울분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면 다시 그 그릇은, 곧 광장은 넉넉하게 비어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쉬기도 하고, 사랑도 한다.

2009년 8월 1일에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이 같은 광장의 역사성과 기능성을 거의 무시하며 등장했다. 국가주의적 전시물, 조잡하게 배치해 있는 조형물, 거대한 동상, 앉아서 쉬거나 책을 읽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좌우의 차량 소음과 경적 소리를 이겨내며 끝없이 구경만 하도록 만든 동선 등은 애초부터 이 광장이 시민들의 일상이 아니라 권위주의적 국가 이념의 조잡한 강요로 조성되었음을 보여줬다. 그 출발 자체가 ‘국가주의 스펙터클’이었다.

그랬던 광장이 시민들의 다양한 열망에 따라 살아 있는 광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나는 광화문광장에 나가서 실로 그러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였다. 졸저 <인공낙원>에서 나는 “광장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널찍한 도심 속의 공간이 아니라 밀실의 개인이 공포와 외로움을 이겨내고 좀 더 넓고 따스한 공동체로 스며드는 통로”라고 쓴 적 있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비록 ‘국가주의 스펙터클’로 조성된 광화문광장이지만, 세월호 유가족과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광장답게 활용하고 있었다. 농성장 한편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분수대에서는 아이들이 잘 놀고 있었다. 농성장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일을 위해 지나가고 있었다. 물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시민들도 있고, 반대 입장을 가진 시민들도 있다. 그들은 또 그들의 방식대로 광장을 나눠쓰면 될 일이다. 실제로 그렇게들 하고 있다.
더 본질적으로는 국가가 이 애통하고 다급한 세월호 사태를 진심을 다해 해결해 나가면 될 일이다. 뉘라서 그 차디찬 바닥에서 쓰라린 시간을 견디고 싶겠는가. 심야에는 취객들이 시비를 걸고 새벽에는 영하의 날씨처럼 차디차다.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면 자연스레 농성은 끝날 것이다. 그렇게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광장에 나와 가을 햇살을 누리며 걸을 것이다. 광장은 그렇게 넉넉한 그릇이어야 한다. ‘국가를 위협하는 불법 농성’이라는 식으로 고약하게 매도할 일이 아니다. ‘국가 재난사태’를 단 한 줌도 해결하지 못한 국가에 대하여 유가족과 시민들이 광장의 겨우 한 뼘에 자리 잡아 쓰디쓴 나날을 견디고 있지 않은가.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