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행운의 편지를 연대의 편지로

친구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돈으로는 집을 살 수 있어도 가정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직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다.” 지당한 말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자는 계속된다. “이 속담은 지구를 10번 돌았으며, 이제 당신이 이것을 받았으니 당신이 행운을 가질 차례이다…. 이 메시지를 정말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시오. 콘스탄티는 1953년도에 처음 이 메시지를 받고 그의 비서에게 이 메시지를 20통 만든 뒤 보내라고 지시했다. 9시간 후 그는 9900만 달러 복권에 당첨되었다…. 당신은 4일 이내에 이 메시지 20통을 보내야 합니다.” 친구는 자신도 좋은 일이 생겼다며 ‘숙제’ 잘하라는 추신까지 달았다. 황당한 결론, 피식 코웃음이 났다. 3주 전쯤의 일이다. 며칠 전에야 SNS 상에서 떠도는 메시지라는 걸 알았다.

행운이 어쩌고 액운이 저쩌고 하는 이런 괴상한 편지가 아직까지 돌아다닌다는 게 신기했다. 장난기가 발동해 가족, 친구, 선배, 후배, 회사동료 다섯에게만 똑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내봤다. 반응은 역시나였다. 세 명으로부터 “귀찮게 왜 이런 걸 보내느냐”는 지청구가 날아왔다.

‘체인 레터’(chain letter), 일명 ‘행운의 편지’. 이 미신 같은 편지는 언제부터 나돌았을까. 베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달라고 적은 것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그 기원은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영국에선 ‘천국으로부터의 편지’로 불렸다고 한다.

‘행운의 편지’ 폐해를 지적한 1959년 3월 29일자 경향신문 ‘여적’

국내에는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1922년 2월 1일자 한 일간지에 ‘호운(好運)을 위하여 구매(九枚)의 엽서를’이라는 제목의 관련 기사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30일 이래로 경성 시내에는 괴상한 엽서가 배달되는 일이 있다. 그 엽서에는, 좋은 운수를 위하여 이것을 아홉 장의 엽서에 기록하여 그대가 호운(好運)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보내라. 이 사슬(편지 연결)을 끊으면 크게 악운이 있다”고 적고 있다. 경성우편국과 광화문이란 일부인(日附印)이 찍혀 있을 뿐 발신인 주소와 이름은 불명이었다.

근대 우편제도의 도입과 맞물려 급속하게 퍼져나간 이 얼토당토않은 편지를 두고 억측이 구구했다. 일본 비밀결사(秘密結社) 조직원 간에 주고받은 암호라느니, 종이 장사, 문방구 주인, 타자기 판매업자들의 농간이라느니 풍문이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일감이 없어질 걸 우려한 우체부의 소행이니, 체신국이 엽서를 많이 팔기 위해 꾸민 장난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다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

행운의 편지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른바 피라미드식 금융사기 편지까지 등장했다. 1935년 10월 상호신용계(相互信用契) 명의로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이틀 내 같은 내용의 편지를 5명에게 보내고 제일 먼저 기명된 사람에게 절수(切手·우표)로 10전씩을 보내라”는 편지가 떠돌았다. 경찰은 최초 발신자를 붙잡아 벌금 1원을 물리고 석방한다.

봉급이 깎인 관리들도 행운의 편지 수법을 빌려 “감봉으로 약자를 침략하니 이로써 민정당은 국민을 적화하려는가”라며 당국을 성토하는 편지를 돌렸다. 엽서 첫머리엔 “이 편지를 받고 정무차관에게 한 장과 다섯 친우에게 한 장씩 보내면 반드시 행운이 그대에게 미치리라”고 적었다. ‘불온한 편지’가 총독부에까지 날아들자 발신자를 색출한다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행운의 편지는 우편질서도 왜곡시켰다. 행운의 편지가 몰려 일부 우체국이 배달에 차질을 빚는 등 애를 먹었다. 당국은 ‘엄중처단’ 담화문을 발표했고, 경찰은 집중단속을 반복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손편지가 살아 있던 시절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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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허망한 편지가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모바일시대에도 나돌다니 생명력 한 번 질기다. 우리 사회가 탐욕의 줄서기를 그치지 않는 한 이런 편지(문자메시지) 돌리기는 계속될 것이다. 황당한 편지조차도 ‘연결’의 힘은 이렇게 세다. 추석이다. 행운의 편지를 지우고 희망의 편지를 돌려야겠다. 눈물로, 견결하게 연결된 당신들, 결실이 있기를!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