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여럿이 합하면 달라질 수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정태연 옮김·에코리브르·1만5000원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와 복종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유명한 실험을 수행했다. 그는 ‘심리학 실험을 도와줄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낸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는 심리학 실험의 대상이다. 가짜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실험을 주관하는 ‘실험자’는 심리학 실험을 주관하는 연구자로 분장하여, ‘피험자’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한다. 연구에 도움을 주는 조연인 ‘학습자’에게 어렵지 않은 단어 퀴즈를 내고, 그가 틀린 답을 말하면 전기충격을 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실험을 앞둔 밀그램의 예측은 이런 것이었다. “전기충격을 받는 희생자가 아무리 강하게 간청하고, 전기충격이 아무리 고통스러워 보여도, 그리고 희생자가 아무리 풀어달라고 애원하더라도 많은 피험자들은 실험자의 명령을 따를 것”(30쪽)이다. 사실 피험자들도 그렇고 그의 동료들도 그렇고,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적으로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평범한 미국인의 선량함’이 작동하여, 피험자들이 생면부지의 타인을 대상으로 10볼트에서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혹은, 믿었다.

그 믿음이 터무니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학습자가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며 적극적으로 실험자에게 반발했고, 실험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밀그램의 말에 따르면, “이 연구의 주요 발견의 근간이고 또한 가장 급하게 설명해야 할 점은 권위의 명령에 끝까지 따르려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자발성”(30쪽)인 것이다.

많은 이들은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등장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문구를 뒤섞어서, 대략 이런 종류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다. 인간은 너무도 나약할 뿐인 그런 존재라고.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사실 악마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 문제’에 빠져드는 순간 어쩔 수가 없다고. 그러므로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비난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권위에 대한 복종>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훈련된 심리학자인 밀그램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조건별로 실험을 구성했다. 가령 실험자 대신 피험자가 학습자에게 가할 전압을 결정하도록 권한을 줄 경우,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함부로 전압을 높이지 않았다. 피험자들은 타인이 고통받는 것을 즐긴 것이 아니다. 그저 명령에 따르고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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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실험자, 즉 권위자가 등장하여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할 경우, 피험자는 전기충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듣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피험자와 같은 입장에 놓여 있는 다른 연기자들이 ‘반항하는 동료’ 역할을 해주었을 때 “이와 같은 집단 상황에서 피험자 40명 중 36명이 실험자에게 도전했다”(177쪽)는 것이다. 한 사람은 약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맞설 경우 권위에 대해 인간은 도전한다. 인간은 권위를 가진 누군가의 명령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어떤 조건 하에서는 권위에 대한 저항성을 보여준다. 그 개별적인 상황과 과정을 이해하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28사단 폭행 사망사건과 같은 비극에 대해서도 올바로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사건을 바라보며 ‘악의 평범성’을 논하는 게으른 담론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과학’이 필요하다.

<노정태 ‘논객시대’ 저자/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