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고통의 섬’ 오키나와인들의 낙천적 천성

오키나와인들은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낙천적인 천성과 정념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국인들에게 오키나와의 이미지는 태평양의 하와이와 비슷하다. 야자수와 파파야 나무가 출렁거리는 거리, 산호초의 투명한 바다, 서핑을 즐기는 관광객들과 호화 리조트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1990년대 이후 오키나와 현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의 출현도 이에 일조했다. 여행자의 심리에서 보면,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같은 동선 안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극단적인 이미지는 ‘기지의 섬’이다. 산호초 해변이 있는 거의 모든 곳에는 또한 미군기지가 있다. 이 기지는 동서 40여㎞에 불과한 오키나와 본섬의 가운데에 ‘알박기’를 한 형국이어서, 마치 팔레스타인의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에 의해 분리되어 있듯, 고속도로도 도넛 형으로 동그랗게 만들게 했다.

나는 농담처럼 ‘기지’만 없다면 이곳은 유토피아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의 오키나와는 물론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일본 난사이(南西) 제도에 진주 목걸이처럼 이어져 있는 류큐열도는 아마 ‘고통의 섬’이었을 것이다. 섬의 대부분이 융기 석회암 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담수를 모으고 저장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오키나와 하천의 색깔을 보면 마치 남원의 실상사 앞 개천처럼 우유를 섞어놓은 듯한 옥빛이다. 석회암이 물에 씻겨 침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석회암 지대는 마치 제주의 현무암 지대처럼 물이 숭숭 빠져나가 벼농사에 적합한 땅이 드물다. 일찍부터 한반도 식의 수전농법으로 논농사를 했으면서도, 근세까지 민중들의 주식이 진한 자줏빛의 고구마였던 것은 이런 까닭이다. 게다가 오키나와는 우리도 알다시피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의 길목이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검토해 보면, 미야코지마의 전 주민이 태풍과 쓰나미에 절멸했던 기록 같은 게 허다할 정도로 자연은 그 자체가 난관이었다.

오키나와 전투 사망자 유족이 6월 23일 오키나와 이토만의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오키나와 전투 추도식에 참석해 기념비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태풍과 쓰나미, 외세의 지배에 시달려
이런 자연재난 말고도 오키나와는 일찍부터 외세의 지배에 시달려왔다. 1609년 규슈지역의 사쓰마 번은 임진왜란 출병 거부 이유를 들어 뒤늦게 오키나와를 무력 점령한 후 류큐왕국의 국왕을 막부로 호송해 갔다. 그리고 나서 오키나와를 반식민지화했는데, 당시의 류큐왕국이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주권을 빼앗지는 못하고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나의 왕국이 일본의 일개 번에 의해 반식민지화되었다는 것은 크나큰 치욕일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민중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사쓰마 번은 류큐왕국을 침략하자마자 왕국 영토의 전 지역에 대해 토지조사 사업을 시행했고, 산출되는 농산물의 총량을 표준화했다. 왕부의 군대는 무장해제시켰다. 당시의 사쓰마 번 역시 기근과 임진왜란 이후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수탈은 매우 잔혹했다.

사쓰마 번은 류큐왕부에 총생산량의 절반에 가까운 쌀과 사탕, 오키나와 특산의 바쇼포(芭蕉布)를 현물납공하게 했다. 이런 강압에 직면한 왕부는 민중들에게 과중한 조세와 인두세를 현물 납부하게 하면서, 오키나와의 민중들은 생애 내내 왕부의 현물납공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풍이 잦은 오키나와의 섬들에서 농사란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특히 인두세는 매우 가혹해서 인두세로 납부할 쌀과 바쇼포가 없어 마을 전체가 도망하거나, 생산력이 없는 노인이 자살하고 아기를 죽이는 등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도 속출했다.

이렇게 수탈당하던 오키나와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의해 완전히 그 주권을 상실하자 그 고통은 더욱 심각해졌다. 가장 큰 고통은 민족차별이었다. 살기 위해 일본 본도로 이주한 오키나와인들은 일본인들에게 토인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유지되던 오키나와의 농업도 급격히 쇠락했다. 메이지 정부는 사탕수수를 단일작목으로 강요해 오키나와 농업체제를 분업화했다. 이 단일작물화의 폐해는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빈곤을 가속화시켰다.

오키나와 안에서 생존이 불가능한 농민들은 일본이 식민지배한 만주로 ‘개척이민’을 가거나 남미로 ‘노동이민’을 떠났다. 100여년 전의 조선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늘날 남미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오키나와 후손들이 100년 전의 오키나와어로 말하고 살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일제 말기에는 충량한 ‘제국신민’으로 총동원되어 ‘스파이 혐의 학살’이나 ‘강제집단사’에 내몰렸다. 종전 이후에는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1972년 일본에 복귀했지만, 현재 상황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이중식민지 체제 아래에 놓여 있다.

오키나와는 현재 북부 나고시 헤노코 해상기지 건설 강행으로 아수라장이다.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카누가 해상보안청에 의해 전복되는가 하면 주민들은 줄줄이 구속되는 식으로 미·일 양국에 의한 폭력적 진압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은 헤노코 신기지를 앞으로 200년간 이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의 각의 해석결정 이후 류큐열도에 자위대를 대거 투입하고 있다. 200년 후 미군 철수 이후에도 중국을 견제할 일본의 핵심적인 군사기지로 삼는다는 게 아베의 계획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간단히 살펴보아도 오키나와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섬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키나와인들이 이런 고통 속에서도 낙천적인 천성과 정념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모든 고통은 지나가리라” 생사관 지녀
간단히 답할 수 없지만, 내 판단에 이것은 오키나와인들 특유의 생사관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생명이 태어나고 돌아가는 곳을 ‘니라이 카나이’라 부른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뿌리의 나라’라는 뜻이다. 살아 생전의 세계를 ‘이 세상’이라 부르고, 죽어 돌아갈 뿌리의 나라를 ‘저 세상’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은 물론 연결되어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저 세상’, 곧 생명이 시작됐던 기원으로서의 ‘뿌리의 나라’이다. 니라이 카나이를 신앙하는 오키나와인 입장에서 현세의 고통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것은 오키나와인 특유의 생사관이자 낙천성의 원천이다. ‘모든 고통은 지나가리라, 그리고 인간은 언젠가 뿌리의 나라로 돌아가리라’고 하는 이 인식이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샤머니즘적 세계인식이라 말하면 안 된다. 반대로 이런 인식 안에는 도서지역 특유의 축적된 삶의 지혜가 숨어 있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오늘의 오키나와인 가운데 전통악기인 산신을 연주 못하는 사람이 없고, 노래와 춤을 못하는 사람도 없다. 오키나와인들은 ‘이 세상’의 고통으로 괴로울 때 산신을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저 세상’에 비하면, 이 세상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오키나와인들의 사유구조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세상의 ‘순간’을 낙천적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덕성이 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