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한국 정서의 단편소설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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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제작연도 2014년

제작국 한국

러닝타임 90분

장르 애니메이션

감독 안재훈, 한혜진

목소리 출연 기영도, 엄상현, 장광

개봉 2014년 8월 21일

등급 전체 관람가

새삼 ‘이미지’(image)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영어사전에는 ‘사진’, ‘모습’, ‘영상’, ‘인상’…. 무뚝뚝한 단어들이 열거된다. 다행히도 한국어 사전에는 원하는 해석이 실려 있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마음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 이미지란 매우 개인적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것이라 믿는 허상을 공유하며 산다. ‘프랑스 영화’ 같다는 표현이나 ‘러시아 소설’ 같다는 표현이 먼저 떠오른다. 꼭 집어 풀어내긴 번거롭지만 어떤 분위기인지는 충분히 짐작을 한다.

2011년 발표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1960년대 말을 배경으로 순박한 첫사랑의 설렘을 따뜻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그리 멀지 않음에도 너무나 까마득해져버린 과거의 시간을 깨워 향수를 자극한다. 하지만 대자본에 의해 전략적으로 무장한 화려한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면 당연히 기술적 아쉬움도 눈에 띄고 재미도 덜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는 나날이 증발되어가는 ‘한국적 이미지(정서)’를 재창조하고 고집스럽게 시각화해냈다는 지점에 부여된다. 또 어떤 관객의 말대로 ‘순수한 성실’ 그 자체가 넘쳐흐르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들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은 아예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영상화했다. 선택된 작품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김유정의 <봄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세 편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만큼 등한시됐던 작품들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스크린 위에 되살아난다. 각 30분씩의 단편으로 만들어져 모음집 형태로 하나가 되었는데, 작품이 지닌 분위기에 맞춰 최대한 상이한 느낌으로 연출되었다.

몽환적 판타지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으로 되살아난 <메밀꽃 필 무렵>의 달빛 아래 펼쳐진 메밀밭의 묘사는 섬세함과 넉넉함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의 심상을 정화시킨다. 해학이 넘치는 <봄봄>의 일인칭 시점은 판소리 도창이 접목되어 한층 구수해졌다. 세 작품 중 비애감이 두드러지는 <운수 좋은 날>은 날카롭고 무거운 작화가 인상적이다. 또 도시 풍경이 많이 등장하는 만큼 고증에도 더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연출을 맡은 안재훈 감독은 현재 아동용 시장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과를 고무적이라 인정한다. 하지만 그 나이를 지난 아이들이 다음에 보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작품이 시작됐고, 현대적 각색보다는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존중해 진행했다고 말한다.

터치스크린

세 작품 모두는 시대적 동질성 외에도 상류계층이 아닌 보통 서민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해가는 도시 속에서 인력거를 끌며 생계를 버틴다. 하지만 전차는 나약한 육체가 경쟁할 상대가 아니고, 넘쳐나는 신문물의 신기와 높은 고층건물들의 위엄은 그의 존재를 더욱 왜소하게 만드는 다른 세상일 뿐이다. 새로운 문물과 문화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와 익숙한 것들을 구식으로 쓸어내버리는 소위 신문화의 격동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더욱 사나워졌다. 하지만 좋은 배필을 만나고, 생계를 유지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평범한 이들에겐 여전히 이 모든 것들이 숨가쁘고 지탱하기 힘들고 버거운 물살일 뿐이다. 과거의 이야기같지만 지금의 이야기이고 여전히 우리의 모습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