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조선이란 거울로 본 우리 시대

흔적의 역사
이기환 지음·책문·1만9800원

경향신문에 <흔적의 역사>를 연재하는 이기환 기자가 쓴 역사책이다. 지은이는 칼럼을 쓰기 위해 <사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들춰볼 때마다 과거의 이야기와 오늘의 이야기가 너무도 빼닮았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때는 <태종실록>에 나온 침몰사건을 떠올렸다. 경상도에서 조운선 34척이 침몰해 1000명이 수장됐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사고 또한 선장의 무리한 운항과 화물 과적에 따른 인재였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닮아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태종은 “모든 사고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지만, 세월호 참사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선시대에는 인사검증도 혹독했다. 인사청문 후보자의 잦은 낙마로 오늘날 정치권에서 ‘인사검증이 너무 혹독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지은이는 조선시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말한다. <세종실록> 1420년 3월 22일조를 보면, 정4품 사헌부 장령에 불과한 송인산이 임금의 명을 거역했다는 말이 나온다. 인사에 대한 항명이었다.

세종은 이발이라는 자를 대사헌으로 임명했는데, 이발은 태종 때 사절단의 일원으로 중국 남경을 방문하면서 한 차례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는 대량의 포물을 가져가 중국 현지에서 팔았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 중국에서도 논란이 됐다. 명나라 예부가 백성들에게 “명나라 조정에 진상할 물건을 가져온 조선인들과 매매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을 정도였다. 세종은 외교 망신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이발을 지금으로 치면 감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헌부 수장으로 임명했다. 세종의 명을 받은 이발이 출근에 나섰지만 사헌부 관리들은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다. 세종이 송인산에게 “이발을 마중하도록 하라”고 명했으나, 송인산 등은 죽기를 각오하고 항명파동을 일으켰다. 결국 항명파동은 13일 만에 사헌부 관리들의 승리로 끝났다. 오늘날로 치면 평직원들이 ‘출근저지투쟁’을 벌여 ‘문제적 인물’을 기어이 낙마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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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지은이가 풀어낸 40꼭지의 이야기에는 침실에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한 정조, 사초 폐기 사건, 군대 면제 등 오늘날 한국 사회와 견주어 봄직한 조선시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서문의 제목처럼 이 책은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서면서도 ‘조선이라는 거울로 들여다본 우리 시대 이야기’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