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郵政)이야기]“정치-역사를 재구성하는 우편학 아시나요”

‘어머니, 잘 계시죠?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보고 들으셨겠지만 얼마 전 우리 중에 아픈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건강하게 있다는 뜻입니다. 부디 모두 몸조심해서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발신일 1953년 5월 17일, 발신지 세계평화를 위한 중국인민위원회 북조선 제5수용소. 인민군 포로 미조구치 하야나리가 일본에 있는 어머니에게 부친 편지(봉함엽서)다. ‘조선인민군 군사우편’ 소인이 찍힌 편지는 6월 27일 요코하마 미군 야전우편국을 통해 7월 2일 배달된다.

미조구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겠다며 한국전에 의용병으로 참전한 642명의 재일동포 2세 중 한 명이다. 군번도 계급도 없이 주일 미군기지에서 사흘간의 훈련만 받고 사지로 뛰어든 열혈 동포청년들, 135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고 242명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되찾은 일본이 이들의 재입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고 두 달, 그토록 바라던 휴전이 되었다. 미조구치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가 남긴 편지 한 장이 희미한 기록,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사를 복원해주고 있다.

“너무 작아서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나침반 삼아 역사의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편물에 남은 소소한 흔적들을 퍼즐 맞추듯이 연결하다 보면 씨줄과 날줄이 엮여 어느덧 스토리가 탄생합니다.”

우표와 우편물을 통해 재구성한 <조선전쟁> 책을 소개하는 우편학자 나이토 요스케. | 정은문고 제공

최근 우편으로 본 <조선전쟁>을 펴낸 우편학자 나이토 요스케(48)를 서울 정동에서 만났다. 도쿄대 문학부를 나온 그는 2000년대 초반 우취(郵趣·philately) 연구를 역사, 정치, 국제관계, 경제 영역에 응용해 어엿한 ‘우편학’으로 발전시킨 인물로 이미 20여권의 관련서를 낸 바 있다. 국내 독자들에겐 “우표로 본 반미의 세계사”라는 호평을 들은 ‘우표, 역사를 부치다’(정은문고)의 저자로 낯익다.

“‘미디어로서의 우편’을 활용해 국가와 사회, 시대와 지역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이 우편학입니다. 그런 점에서 1945년 이후의 한반도, 특히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현대사는 실로 매력적인 연구 대상입니다. 이번 책도 다양한 우표와 우편물을 통해 한반도 현대사의 ‘원점’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나이토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국가 미디어’로서 우편의 역할이다. 인터넷과 SNS로 소통하는 시대에도 그 역할이 유효할까.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기념우표에 티벳과 위구르의 상징동물을 넣었습니다. 티벳과 위구르는 중국 지배하에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21세기에도 우표는 국가 미디어로 동원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직설적으로 표현하던 걸 이젠 우회적으로 드러낼 뿐이죠.”

우표, 봉투, 소인 등에 남은 정보로 정치, 국제, 역사를 재구성하다보면 오독하는 일은 없을까. 그는 집단지성으로 이를 해결한다고 했다. “잘 모르거나 불확실한 내용이 있으면 블로그에 바로 올립니다. 그러면 많은 ‘고수’들이 지식을 공유하죠. 주변의 역사학자들에게도 수시로 조언을 구합니다.”

나이토는 지난 12일 폐막한 2014필라코리아에서 금상을 받았다. 30여년간 수집한 자료가 하도 많아서 본인도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가장 비싼 소장품은 ‘일본 최초의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인데 우편학자의 자존심을 걸고 1000만원을 ‘질러’ 손에 넣었단다. 최근 재미있는 흐름이 하나 있는데, 중국인들이 우표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중국우표 값이 크게 뛰고 있다는 것. 만주국이 패망하기 직전에 발행해 사용 한 번 못한 우표를 헐값에 사 두었는데 지금 100만 엔을 호가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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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학자 나이토의 바람은 한 가지다. “우표를 오타쿠의 취미 대상쯤으로 여기는데 그 안에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가는 것입니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