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누구를 위한 ‘연명치료’인가

죽음을 원할 자유
케이티 버틀러 지음·전미영 옮김·명랑한지성·1만8000원

여든다섯 살의 아버지는 7년째 뇌졸중을 앓고 있었다. 시력도 잃고 치매까지 걸렸다. 그의 오른쪽 빗장뼈 아래 피부와 근육에는 회중시계만한 심박조율기가 삽입돼 있었다. 여든 살이 넘어 심장이 더디게 뛰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몸에 삽입한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간병한 이는 어머니였다. 줄잡아 일주일에 100시간을 아버지의 간병에 쏟고 있었다. 아버지의 투병이 7년째 이어지던 가을, 여든두 살의 어머니는 딸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의 심박조율기를 꺼야겠다. 네가 좀 도와주렴.”

지은이는 7년 동안 아버지의 투병과 어머니의 간병을 기록하며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연명장치가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것인지를 다시 묻는다. 현대의학이 인간의 신체에 과도하게 개입하여 인간의 신체적 자율권과 죽을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의 경험상 ‘연명치료’는 ‘자연사를 막는 과잉치료’였다. 의사들 때문이다. 의료진들이 환자의 연령과 몸상태를 감안하지 않은 채 심박조율기를 시술하고, 위에 구멍을 뚫어 영양을 공급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그는 반문한다. 만약 의사가 아버지에게 심박조율기를 달기 전에, 수술 후 환자의 인지능력과 신체활동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의학적 소견을 좀 더 풍부하게 제공했더라면 어땠을까. 심박수가 느려지는 등의 노화현상을 굳이 첨단의술로 치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으면 어땠을까. 의사가 환자가 전신마취를 견딜 수 있는 연령인가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다양한 정보를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아버지의 남은 생이 지은이와 가족들에게 그토록 고통스러웠을까.

과잉치료가 가족들에게 남긴 것은 혼란과 죄의식이다. 불치병에 걸린 가족을 간병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의 생명을 연장하고 죽음을 막는 의료절차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언제 의사에게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나? 언제 “그만 됐다”고 말해야 하나? 이런 불편한 물음들이 가족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음에 대한 답이 주어지든 회피되든 간에 가족은 사랑하는 이가 죽음을 맞는 시점과 방식을 결정하는 판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심박조율기를 끄기로 결정한 후 지은이는 한동안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의학과 연명치료로 현대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지도 한 장 없이 미궁 속을 헤매고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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