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기의 야권, 봇물 터진 통합론

재·보선에서 급조된 야권연대·진보정당 홀로서기 모두 실패로 끝나…

“이대로 가면 총선·대선도 진다” 소통합·대통합 등 야권재편 목소리 커져

7·30 국회의원 재·보선 경기 수원을(권선구) 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 52.8%, 정의당의 지지를 받은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후보 45.0%, 통합진보당 임미숙 후보 0.9%였다.

대선후보급 거물인 손학규 후보는 야권연대를 이룬 정의당의 지지까지 받고도 새누리당의 신인 김용남 후보에게 완패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야당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말해주는 결과였다”고 말했다.

야권에 두 가지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하나는 일시적인 야권연대는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야권의 ‘만능열쇠’로 여겨졌던 야권연대의 종언이 이번 선거로 확인됐다.

지난 7월 30일 저녁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정의당 노회찬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천호선 대표, 심상정 원내대표 등 당직자들이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다른 하나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을 제외하고 정의당, 통합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등 다른 진보정당들은 독자적으로 후보를 당선시킬 만큼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진보정당들의 홀로서기 실험은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었다. 우리나라가 양당제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는 것도 제3당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다.

야권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꿔야 한다는 환골탈태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주장이 야권 통합론이다.

야권 통합론은 소통합에서부터 대통합까지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과거에는 선거를 앞두고 급히 통합했지만 2016년 4월 총선까지 20여개월 동안 큰 선거가 없는 만큼 야권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는 것이 통합론자들의 견해다.

“새정치·정의당 합당” “진보블록 통합”
소통합은 두 가지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새정치연합(130석)과 정의당(5석)의 합당이다.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은 지난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단일후보를 내는 등 긴밀히 협조해 왔다. 노선도 큰 차이가 없다.

새정치연합 우원식 최고위원은 “정의당은 노동3권 보장, 서민들의 안정적인 삶 등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새정치연합의 을지로위원회가 하고 있는 일과 같다”며 “지금은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원식 최고위원은 “정의당과 합당하면 진보성향의 의원들이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정치연합에도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일각에서도 통합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초선인 정의당 의원들이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새정치연합과의 통합 등 앞으로의 다양한 진로를 놓고 의원단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간판스타인 노회찬 후보를 출마시키고도 패배했으며, 지방선거에서도 단 한 명의 기초단체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또 하나 거론되는 소통합론은 진보블록 통합이다. 이념적 지형이 넓은 새정치연합을 제외하고 확실하게 진보이념으로 무장한 정의당과 통합진보당(5석), 노동당 3개 정당이 우선 통합하자는 안이다. 만약 이들 정당이 다시 통합할 경우 17대 국회 당시 민주노동당과 유사해진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우리는 진보정당들이 한국 사회에서 여러 개 난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진보정당들이 통합된다면 진보정치를 갈망했던 지지층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김종철 부대표도 “가치와 노선과 정당 운영원리가 같은 진보정당들이 우선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며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과 여기에 민주노총이 함께하는 정당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의당은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부정의혹사건으로 통합진보당에서 분당한 바 있다.

야권에서는 소통합을 해도 거대 여당인 새누리당에 맞서 승리할 수 없는 만큼 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탄탄한 고정지지층이 35% 정도인 반면에 야권의 고정지지층은 25% 정도로 지지층에서도 야권이 새누리당보다 훨씬 불리하다.

7·30 재·보궐선거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종철 노동당 후보가 7월 14일 신대방동 동작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실천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빅텐트·단일정당론 등 공천방식이 관건
김두수 넥스트코리아연구소장은 “새누리당은 아무리 잘못해도 35% 정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야권은 고정지지층이 취약하다”며 “야권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모든 정당이 통합한 후에 중도층을 끌어안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과 진보정당들이 참여하는 대통합안으로 거론되는 게 ‘빅텐트론’과 ‘야권 단일정당론’이다.

‘빅텐트론’은 미국의 민주당처럼 이념과 노선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정당이라는 큰 우산 아래 다양한 세력이 결집해 집권해야 한다는 안이다. 미국 민주당에는 진보세력부터 공화당에 가까운 성향층까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2년 총선 때부터 ‘빅텐트론’을 주장해온 새정치연합 김기식 의원은 지금도 여전히 ‘빅텐트론’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김기식 의원은 “야권이 앞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불안정한 선거연합보다는 당내에서 정파들이 경쟁을 하더라도 하나의 정당 틀 안으로 모여야 한다”며 “‘빅텐트론’은 이념과 노선이 다른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 노동당 등이 연합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야권대통합의 또 다른 형태로 ‘야권 단일정당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과거 열린우리당 해체 당시 회자됐던 제3지대 창당론과 유사하다. ‘야권 단일정당론’은 현재 집권하고 있는 브라질 노동당이 모델이다. 브라질 노동당의 경우 정파등록제를 통해 4∼5개의 세력이 하나의 정당 안에 모여 있다. 브라질 노동당은 각 정파의 독립성을 최대한 인정해주고 있다. 야권 단일정당론자들은 빅텐트론자들과 달리 각 당의 이념과 노선이 통합에 장애가 될 만큼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야권 단일정당론자들은 각 정파들이 공천방식에만 합의하면 합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두수 넥스트코리아연구소장은 공직후보자 선출방식으로 ‘슈퍼스타K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슈퍼스타K 방식’은 1단계로 당에서 후보자를 다방면으로 평가하고, 2단계에서는 지역 당원이 당의 평가 결과를 토대로 투표하는 방식이다. 만약 여기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3단계로 넘어간다. 1·2위 후보자를 놓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해서 최종적으로 한 명을 선출하는 것이 3단계 방식이다.

김두수 소장은 “지금까지 야당이 통합할 때 지도체제, 지분 문제 등 공천과 관련한 협상에서 꼭 막혔다”며 “공천방안이 정당하다면 여러 정파들이 쉽게 통합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