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잊혀져가는 오키나와의 조선인 위안부

오키나와로 강제연행된 조선인 문제에 대한 연구 중 조선인 학병이나 군부에 대한 연구나 기록이 일부 존재하는 데 비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들어 이 문제가 국제사회의 중요한 쟁점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 기간에 일제에 의해 자행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성노예화’는 매우 심각한 전쟁범죄이다. 1991년 한국의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일본의 사법당국에 식민지 책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한 이후, 이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사적 쟁점이 되어 왔다. 일본 정부 역시 위안부 강제동원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던 초기에는 고노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와 군에 의한 강제연행의 범죄성을 사죄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 것임을 약속한 바 있다.

아베 극우정권의 역사적 퇴행
그러나 2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아베 극우정권의 등장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실규명에 저항하는 강력한 역사적 퇴행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아베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신우익적인 역사관과 함께 일본 사회 전체의 우경화 경향과 맞물린 문제라고 판단된다.

아베는 기본적으로 천황주의 내셔널리스트다. 그는 2차대전 패전 이후 연합국 당국에 의해 제정된 이른바 ‘평화헌법’이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에 대해 강한 위화감을 갖고 있다. 아베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가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라는 점이 상기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전전(戰前)의 천황제 파시즘 체제에 대한 긍정과 천황주권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념일 것이다.

7월 2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 참석자들이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을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이런 아베의 극우적 신념은 필연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그 특유의 우익적 세계관을 교육을 통해 강제할 것을 요구하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그 핵심 문제이다. 첫째, 영토문제.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문제나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한국과의 독도 문제의 경우, 명확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사실을 교과서에 기술한다. 둘째, 오키나와 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한 스파이 혐의 학살 및 집단 강제사 문제의 경우 교과서 기술에서 삭제한다. 이는 전전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역사적 기억의 은폐와 연결된다. 셋째,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및 전쟁범죄에 대한 기술 삭제. 이 역시 앞의 문제와 연결된 것으로, 결국 이 세 가지는 전전 일본의 역사적 정당성을 긍정하고 옹호하기 위한 아베의 의도가 적극 개입된 문제이다.

역사인식 문제에서의 이러한 세 가지 사안이 아베 식의 ‘아름다운 나라’의 기초라면, 평화헌법의 무력화를 통한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변신이야말로 아베 식의 ‘새로운 나라’의 토대이다. 최근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내각회의에서 의결했다. 이것은 헌법조항을 국민투표를 통해 변경하지 않고, 각의에서 해석을 변경함으로써 실제적으로는 헌법을 무력화시킨 쿠데타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시민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에서 간략하게 거론한 몇 가지 사항만으로도 오키나와에 있어 아베 정권은 하나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심각한 재앙은 현재의 오키나와가 다시금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으로 우경화하는 과정에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아베의 영토관에 있어서 심각한 국제 분쟁의 요소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오키나와현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이다. 이 영유권 문제에 있어 일본이 아베 식의 고유영토론을 밀어붙이고,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 변경을 통해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폐기할 경우, 센카쿠 열도는 우발적인 사태에 의한 무력 분쟁의 장소로 화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오키나와 전쟁 당시의 ‘스파이 혐의 학살’이나 ‘집단 강제사’의 은폐 역시 오키나와인의 관점에서 보면, 기억의 왜곡 혹은 삭제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일본식의 국가주의를 정당화하는 시도로 회귀할 것이다. 그것은 작금의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둘러싼 국가와 오키나와 현민의 투쟁과정 속에서 ‘국익’을 근거로 오키나와 주민의 자립과 자치에 대한 희망을 봉쇄하고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오키나와사의 비극과 밀접한 문제다. 일본군 제32군이 오키나와에 편성된 이후, 오키나와 전역에는 일본군 위안소가 건설되었다. 전체 140여개소 가운데 약 40개소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강제연행되었음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오키나와 전쟁 기간 희생된 조선인이 약 1만명에 이르는데, 아마도 이 숫자 속에는 상당수의 일본군 위안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최초로 문제 고발한 배봉기 할머니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는 오키나와인 입장에서도 비극의 일부이다. 조선과 중국 본토, 타이완 등에서 강제연행된 위안부도 많았지만, 일본군은 오키나와 현장에서 오키나와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일반이 치밀하게 검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한국의 연구자 입장에서 오키나와 문제를 검토할 경우, 일제 말기 오키나와 전쟁 기간에 오키나와로 강제연행된 조선인 문제에 대한 연구는 매우 중요한 테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선인 학병이나 군부에 대한 연구나 기록이 일부 존재하는 데 비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개인적인 추론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쟁 기간에 적어도 700명 이상의 조선인 출신 일본군 위안부가 오키나와로 강제연행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국과 대만, 남방과 한반도로부터 강제연행된 이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치밀한 탐구나 실증적 조사·연구작업은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이 최초로 고발된 것은 1972년 당시 오키나와에 체류하고 있던 전 위안부 배봉기 할머니에 의해서였다. 일본군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강제연행되었던 배봉기 할머니는 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에도 고국인 한반도로 귀국하지 않은 채 오키나와에서 고통스런 삶을 마쳤다.

1972년은 오키나와가 미국의 신탁통치에서 일본으로 주권이 반환된 해이다. 이 시기에 전 일본군 위안부였던 배봉기는 재일조선인 일반이 그렇듯 ‘무국적자’로 처리되었는데, 이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과거 ‘일본군 위안부’로 오키나와에 강제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역사상 최초로 고백했다. 그러나 당시는 한국이 일본과 한·일협정을 이미 체결한 후였고, 더구나 북한과의 체제 대결이 가속화되고 있던 시점이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은폐되었다.

오키나와로부터 온 편지

만일 1972년 당시의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실증적인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배봉기 할머니와 같은 살아 있는 고통의 역사를 존엄하게 인식했다면 오늘과 같은 역사의 비극적 퇴행은 상당 부분 저지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든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rac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