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늦게 와 미안합니다” “와주셔서 힘이 납니다”

‘기다림의 버스’ 타고 온 시민들과 진도 실종자 가족 만남의 현장

“박영인~.” “이영숙~.” “고창석~.” “양승진~.” “허다윤~.” “권혁규~.” “권재근~.” “조은화~.” “남현철~.” “황지현~.”(10명의 세월호 실종 자들)

진도 팽목항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 이어졌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족들의 오열은 바람을 타고 바닷속 세월호에 아직 남아 있는 자식들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참사 발생 100일을 하루 앞둔 7월 23일, 서울, 광주, 대구, 안산 등지에서 모인 시민 200여명은 ‘기다림의 버스’를 타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는 진도체육관으로 향했다. 탑승객 중에는 한영희씨도 있었다. 중국동포인 한씨의 동생 한금희씨는 4월 16일 남자친구 이도남씨와 함께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이 동생에 대한 마지막 추억이었다.

7월 2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열린 세월호 실종자 귀환 기원행사에 참가한 진도고 학생들이 100개의 노란색 풍선을 하늘로 날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버스에 오른 한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말문을 열기도 전에 그는 울먹거렸다. 눈에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도에서 제 동생이 희생됐어요. 동생을 잃고 온가족이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제 한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습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 확인”
세월호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이 버스 화면에 나왔다. 한씨는 또 울었다. 버스가 진도에 가까워질수록 탑승객들의 마음은 무거워지는 듯했다. 버스 안은 흐린 먹구름 같은 침묵만 흘렀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는 지난 6월부터 매주 금요일 무박 2일 일정으로 ‘기다림의 버스’를 운영해 왔다. 그동안은 매번 진도체육관을 가지 않고 팽목항으로 바로 갔다. 혹여나 실종자 가족들이 ‘구경거리가 된 느낌’을 갖게 될까봐 염려해서다. 하지만 이번엔 직접 체육관을 들렀다. 체육관을 찾은 ‘기다림의 버스’ 탑승객들은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뒤늦게 인사를 드리게 된 점 정말 죄송하다”며 절을 올렸다. 가족들도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맞절로 화답했다.

실종자 가족 대표인 남경원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들이 와주셔서 힘이 납니다.” 남씨는 단원고 학생 남현철군의 아버지다. 남군은 아직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제가 천안함 사건 때 그런 걸 겪었어요. 사고가 났구나, 아프겠구나.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안 끝났어? 불과 몇 개월 전 제 모습인데, 직접 피해를 겪어보니 참 반성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생각해주시고 와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오늘 실종자 가족들은 국민들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런 희망을 보고 힘이 나서 잠이 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실종자 가족들과 70여일을 함께 지낸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는 ‘기다림의 버스’ 탑승객들과 가족들의 만남에 앞서 “100일이 지나면 가족들은 다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다. 가족들이 기대하는 건 국민들이 실종자들을 잊지 않고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100일을 계기로 적극적인 유대와 신뢰를 쌓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월 23일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서로 무릎을 꿇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백철 기자

시민들은 실종자 가족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팽목항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전야제’로 발길을 돌렸다. 실종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하늘 위로 풍등도 띄워 보냈다. 세월호를 바다에서 다시 건져올리는 퍼포먼스도 열렸다. 전야제가 끝난 뒤 시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20여명만 진도체육관으로 돌아와 실종자 가족들 곁에서 눈을 붙였다.

7월 24일의 팽목항은 시끌벅적했다.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 세월호 100일을 추모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평소 가족들이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며 음식을 올렸던 방조제 입구에서는 인근 암자의 스님들이 큰소리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고 있었다. 방조제 안쪽 등대 근처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특별기도회를 열었다. 팽목항 인근 민박집 직원인 ㄱ씨는 “평소엔 방이 텅텅 비었는데 어제부터는 꽉 들어찼다”며 “최근 몇 주간은 인기척이 거의 없다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만 요란하다”고 말했다.

오후 2시부터는 진도군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함께하는 귀환 기원 행사가 열렸다. 군민들은 학생, 교사, 일반인 실종자들에게 “잊지 않겠다” “보고 싶다”는 편지를 띄웠다.

“특별법 통한 진상규명 힘 보태고 싶어”
팽목항에서 세 달 넘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상민씨(가명)도 행사를 지켜봤다. 그는 지난 100일을 “슬픔, 안타까움, 눈물이 가득한 시간이었다”며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지난해 태안 해병대캠프 참사 때 자원봉사에 나서려다가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이후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바로 부산을 떠나 진도로 왔다. 애초 1박2일 일정으로 왔지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지금까지 온 것이다.

이씨는 “태안 참사도 터졌을 때는 온국민이 깜짝 놀랐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세월호도 점점 잊혀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금방 끓고 식어버린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기다림의 버스’ 탑승객 유미숙씨는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과 함께하고자 먼 길을 달려왔다. 천주교 신자인 유씨는 “평소 프란치스코 교황도 멍들고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하라고 가르쳐 왔다.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교인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자주 봐왔다”며 “세월호 특별법을 통한 진상규명에 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서 이렇게 진도를 찾았다”고 말했다.

귀환 기원 행사 참가자들은 실종자들의 빠른 귀환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한 뒤 100개의 노란색 풍선을 하늘로 띄웠다. 실종자들의 이름도 다시 외쳤다. 실종자 가족들은 세월호가 침몰한 방향의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 실종된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는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진도고 남학생들의 손을 꼭 붙잡으며 “그래도 학생들이 제일 고마워”라고 말했다. 자녀와 동갑인 학생을 만나서인지 이 어머니는 한동안 학생의 손을 놓지 못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하던 학생들도 이내 고개를 떨궜다.

‘기다림의 버스’도, 진도군민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영희씨도 방조제 한편 노란 리본에 “고 이도남, 한금희,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편히 쉬거라”란 글귀를 남겨놓고 팽목항을 떠났다. 이틀간 시끌벅적했던 팽목항은 다시 조용해졌다. 언제쯤이면 세월호 실종자들과 가족들도 제자리로 올 수 있을까.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