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분통 터지는 기초연금

박근혜 정부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 대부분 20만원 지급”…

실제로는 수급노인 절반 정도만 전액 수령, 기초생보자는 아예 혜택 못 받아

서울 은평구에서 홀로 사는 박명순 할머니(가명·72)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박 할머니는 현재 생계급여 38만원, 기초노령연금 10만원 등 정부로부터 48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박 할머니는 지난 7월 25일 기초노령연금 대신 기초연금 20만원을 지원받았다. 할머니 총소득이 48만원에서 58만원으로 늘어났다. 10만원을 더 받은 할머니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8월 20일 지급되는 생계급여가 38만원에서 28만원으로 줄어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할머니는 “왜 정부가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장 가난한 노인들 복지혜택에서 소외
정부가 7월 25일부터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제를 폐지하고 기초연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연금제가 실시되면 ‘소득하위 70% 이하 65세 이상 노인 대부분이 20만원을 지급받는다’고 홍보해 왔다. 하지만 소득하위 70% 이하 노인일지라도 20만원을 모두 받는 노인은 전체 수령자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연대 관계자들이 7월 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혜택 수여를 촉구하며 도끼상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윤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과 시민단체인 기초연금연대에 따르면 전체 수급노인 447만명 중 43.4%만 20만원 전액을 받는다. 기초생활보장수급 노인, 노인 부부 등 여러 감액 조항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20만원을 다 받은 노인들에 비해 일부만 수령한 노인들은 정부로부터 현금을 받고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우선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이 기초연금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정부가 이들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 20만원을 소득으로 인정해 매월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비에서 20만원을 빼고 주기 때문이다. 결국 기초생활보장을 받고 있는 40만명의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기초연금 수입은 0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복지정책인 기초연금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독거노인 1명이 48만원을 받을 경우 주거비를 빼면 한 달 생활하기가 빠듯한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의 복지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야 할 노인들이 기초연금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도 수익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노인 부부의 경우 기초연금은 40만원이 아닌 32만원만 받는다. 노인 부부는 각각 20%씩 감액 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들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부부 감액 대상자는 전체 수급자의 39%인 173만명에 이른다.

노인 부부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오모 할아버지는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이 ‘모든 어르신에게 20만원을 준다’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며 “박근혜 정부가 노인들에게 잔뜩 기대만 부풀려놓고 실제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들에게 감액해서 지급하고 있지만 통계를 잡을 때는 전액 지급자로 분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부 감액은 과거 기초노령연금 때도 있었던 것으로, 이번 기초연금에도 실시하고 있다”며 “부부의 소비활동을 고려할 때 20% 정도를 감액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해서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기초연금 수급자가 국민연금과 함께 받을 경우도 감액 대상이다. 이들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만원에서 19만원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아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2년이면 19만원을, 13년이면 18만원을 받는다. 이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해놓은 정부의 방침 때문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기금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과 세금이 재원인 기초연금을 연계한 괴상한 연금을 만들었다”며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할 때 이런 형태의 연금은 나오지 말았어야 했으며, 현재의 기초연금제는 몇 년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노인들에게 최소 10만원 이상의 기초연금을 기본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추계에 따르면 4만여명의 노인들이 10만원이 안 되는 기초연금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초연금에는 소득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감액규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감액규정에 따라 노인 단독가구의 경우 ▲월소득 79만∼81만원은 8만원 ▲월소득 81만∼83만원 6만원 ▲월소득 83만∼85만원 4만원 ▲월소득 85만∼87만원은 2만원을 지급받는다.

장기적으로 기초노령연금보다 손해
또한 올해 만 65세 이상이 되는 노인과 기존의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자가 아니지만 새로 기초연금 대상자로 포함되는 노인들은 반드시 신고해야만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르고 신고하지 않으면 기초연금을 한푼도 받을 수 없다.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정부에서 금융자산 정보조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기초연금 신청 정보를 몰라서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에서 모든 노인들에게 우편발송을 통해 기초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장기적으로 보면 기초연금이 기초노령연금보다 손해를 보는 것으로 추정됐다.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증가율(A값)을 반영해 인상되지만, 기초연금은 물가와 연동돼 인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소득상승률은 3.9%인 데 비해 물가상승률은 2.9%였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8년 후부터는 기초연금이 기초노령연금액보다 적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의 기초연금제는 당장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갈 수 있지만 50대 베이비붐 세대들에게는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기초연금액의 적정성을 평가하여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남윤인순 의원은 “정부가 5년마다 연금액의 적정성을 평가하여 조정한다고 하지만 기초연금을 인상시킨다는 보장이 없다”며 “특히 앞으로 5년 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