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의 헬로 월드컵]‘토탈심리축구’로의 진화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네덜란드에 대한 기대치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4강까지 진출하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루이스 판 할 감독은 주변의 이런 평가를 팀의 정신력을 강화하는 밑거름으로 역이용했다. 네덜란드는 판 페르시와 아르헨 로벤, 스네이더 정도를 제외하면 멤피스 데파이, 제러메인 렌스, 르로이 퍼 등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젊은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판 할 감독은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스타일을 버리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도록 가르쳤다. 이 점이 과거의 네덜란드와는 다른 팀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4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에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네덜란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강한 정신력으로 ‘라커룸의 기적’
판 할 감독의 심리적인 경기 운용이 가장 빛났던 것은 코스타리카와의 8강전 때였다. 선발로 출전한 골키퍼 야스퍼 실레센을 경기 끝나기 직전 팀 크롤로 교체한 것이 주효했다. 상대 팀에게 예상 밖의 놀라움을 안겨주었고, 이것이 경기를 이기는 열쇠가 되었다.

반면에 러시아와의 첫 경기를 1-1로 비긴 대한민국 대표팀은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경기 초반부터 어떠한 전략과 전술로 경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상대를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에게 압박을 당하면서 경기력이 무너졌다. 정신력까지 흔들리면서 경기를 추스르지 못하는 약점을 보였다. 브라질도 마찬가지였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순간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는 상대에게 초반 연속골을 허용하면서 쉽게 무너졌다. 네이마르와 티아고 실바의 결장으로 팀내 정신적인 리더를 잃은 상황에서 분위기를 추스르거나 경기를 컨트롤하는 선수가 보이질 않았다.

스포츠 심리학에서 선수가 확신을 갖고 동기부여가 잘 되면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알제리,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같은 팀들이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보여준 것은 대부분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하고 정신적인 헌신과 희생을 하도록 이끌었던 것이 밑바탕이 되었다. 이른바 ‘라커룸의 기적’에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상대의 공격을 강하게 압박하고 볼을 빼앗는 순간 빠른 역습으로 전개하면서 경기를 풀어가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도가 좋은 결과로 나타나면서 다시 선수단이 확신을 갖고, 그 다음 경기에 대한 동기부여와 함께 집중력이 더욱 높아지는 상승효과로 이어진 것이다.

결승에 오른 독일은 어떤 선수가 들어와도 팀전술 면에서 변화가 별로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경기력을 갖추고 있다. 누가 경기에 들어가도 제몫을 해준다는 뜻이다. 이것은 선수들의 경기력과 더불어 경기에 임하는 정신력이 모두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뜻이다. 반면 세계 최고의 리그를 지니고 있지만, 상업화의 길에서 자국 선수들이 뛸 기회를 잡지 못한 잉글랜드는 허무하게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돈은 많이 받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진 정신력을 보이는 선수들에게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대한민국 대표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림픽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병역면제를 받고 해외 리그에 진출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은 선수들에게서 강한 정신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감독이 이런 선수들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 점이 가장 뼈아픈 실책이었다.

김세윤의 헬로 월드컵

정신적으로 철저히 준비된 팀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 이제 월드컵 축구는 토탈사커에서 토탈심리축구로 변화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부활도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전 2010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분석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