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따뜻하고 참 ‘착한’ 연극

후덥지근한 무더위가 계속되는 7월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대형 뮤지컬이 주를 이루는 계절이 되었다. 물론 시원하게 부수고 터지는 블록버스터 영화나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한 대작 뮤지컬들은 일단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해주고, 더위에 지친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너무 부수고 신나고 화려한 작품들만 연달아 보다 보면 때로 그 자체가 힘이 들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은은한 봄볕같이 소박하고 따뜻한 연극 한 편이 의외로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기도 한다.

최창근 작, 김경익 연출의 연극 <봄날은 간다>는 이런 소박하고 따뜻한 연극 공연을 만나기 쉽지 않은 한여름에 만난, 그야말로 ‘봄날’ 같은 연극이다.

연극 <봄날은 간다> |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2001년 우리극연구소의 김경익 연출과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에 의해 초연되어 다음해 동아연극상 작품상·남자연기상·무대미술상을 수상했고, 2006년에는 작가인 최창근이 직접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8년 만에 막을 올린 이번 무대는 초연을 공연했던 김경익이 다시 연출을 맡았다. 대신 배우들은 길해연, 김지성, 정석원 등 그간의 배우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얼굴들로 바뀌었다.

<봄날은 간다>는 참 ‘착한’ 연극이다. 어머니, 아내, 남편 오로지 세 사람만 등장하는 이 작품 속에는 악하거나 이기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들을 데려다 자기 몸처럼 아끼고 보듬으며 키운 어머니,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남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행여 누구 하나 마음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는 아내, 오로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인생 전부를 바치려 하는 남편. 모두 자신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늘 그들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미련하리만치 착한 사람들이다. 그 마음이 너무 순수하고 고와서 조금은 답답하기도 하고, 요즘 우리 사회와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몰입이 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바로 그런 이질적인 모습이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우리의 삶, 애틋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립게 만든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길’ 위에서 펼쳐진다. 어머니 묘소를 향해 가고 있는 아내와 남편, 그리고 그 길 곁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죽은’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각자의 삶과 서로에 대한 추억이 극의 전부를 이룬다. 여기서 ‘길’은 그들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자 굽이굽이 힘겹게 걸어온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혼자서는 외롭고 지치는 길이지만, 바로 옆에 의지할 사람이 있고 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기에 계속 섰다 주저앉았다를 반복하면서도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연극 <봄날은 간다> | 한강아트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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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가족의 사랑이다. 극 중 등장하는 세 사람은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다. 전혀 생면부지였던 ‘남남’이 부모와 자식이 되고, 오빠와 누이동생이 되고, 다시 남편과 아내가 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말 못할 사정이 담긴 눈물과 한숨, 수많은 기다림을 인내해야 했다. 피와 살을 나눈 형제, 부모 간에도 폭력과 패륜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이들의 눈물겨운 ‘가족 지키기’는 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마음을 울리는, 미묘한 여운을 남겨준다. 은은한 봄빛의 무대를 배경으로, 봄빛처럼 따사로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봄날은 간다>는 그렇게 한여름에 만나는 따뜻한 봄날 같은 연극이다. 7월 20일까지,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