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눈]새누리당 이준석을 위한 변명

새누리당에서 뜬금없이 쇄신위원회를 만든다고 해서 정말로, 이건 또 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상시국이라며 비대위 만들었다고 한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그럼 쇄신은 또 뭐야? 그런데 쇄신위원장이 이준석이라는 걸 알고서,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쇄신위원회를 만든다고 하고 이준석을 찾은 게 아니라 이준석을 데려다 쓰려니 쇄신위원회를 만든 거 아닌가, 그런 게 기획자의 의도였을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준석과 동료로 같이 일했던 경험을 가진 야당 쪽 사람은 어쩌면 나밖에 없을지도 모를 것 같다. 그래서 그냥 보고 느꼈던 얘기라도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졌다. 이준석이 작년 2월 처음 방송에서 진행자로 데뷔하던 날, 공교롭게도 그 3시간짜리 특별 방송에 내가 패널로 앉아 있었다. 대선은 지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던 시절, 이준석이 진행하는 방송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심정, 아 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랬다.

그렇게 해서 SBS 계열의 경제채널에서 그와 나는 별로 인기는 없지만, 어쨌든 그 채널을 대표하는 방송을 하나씩 이끌게 되었다. 공중파에 비하면 정말 규모 등에서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그나 나나 어차피 별로 공적으로는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동료로서 꽤 열심히 했다. 나는 대선에서 진 패배 쪽, 그리고 그는 정부 출범한 후 뒤로 밀려난 ‘팽’ 쪽, 피차 목숨 걸고 열심히 해야 할 공적인 일은 없던 시절이다. 진행은 그가 나보다 먼저 시작을 했는데, 그래도 이준석은 나보다는 바빴다.

우리는 시청률도 필요하고, 열악한 제작비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서 방송을 잘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종종 그의 방송에 출연을 하고, 아이템 기획도 기회가 되는 대로 같이했다. 경제방송이라서 각 사안에 대해서 좋든 싫든 의견을 말해야 하고,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보면 다른 정치적인 건 몰라도 경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게 된다.

그는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상당수를 채우고 있는 그런 토건주의자는 아니다. 비정규직에 대해서 가슴 아파하고, 최저임금도 지금보다는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1년 가까이 매번 속에 있는 얘기를 꺼내놓고 토론한 결과로는, 최소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중도를 지향하는 사람들보다는 더 내 생각에 가깝다. 그가 헌법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했다는 김종인과 친하다는 말이 괜히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가 나에게 들려준 말 중에 제일 재밌는 얘기는 당시 민주당이 이준석 같은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 이준석 같은 사람이 결국은 자기 친구라서 돌고 돌아 친구들이 자신에게 의견을 구한다는 얘기였다. 이준석 같은 사람, 결국 이준석의 친구 아니겠느냐?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니, 어떤 때는 친구 같고, 어떤 때는 동생 같고, 어떤 때는 정말로 동료처럼 느껴졌다.

우석훈의 눈

객관적으로 보면, 새누리당의 쇄신위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대선 전의 비대위에 비하면 권한도 없고, 역할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쇼라고 해도 할 말은 없을 듯싶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에서 토건주의자도 아니고 기회주의자도 아닌 젊은 인사들이 계속 발굴되는 것은 한국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걸 왜 야당은 못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상식이지 않겠는가? 한때 동료였던 입장에서 이준석의 성공 가능성이 0%는 아니라고, 그의 성공을 기원해주고 싶다.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