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청라 경기장 상공을 떠도는 허망한 숫자들

준공한 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곳곳이 공사판인 인천아시안게임 주경기장. 9월 19일 개막 전에 각 경기장이 국제공인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안상수 전 시장의 무리한 사업 추진과 정치적 야망이 빚은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총생산유발효과 12조9328억원이라는 좀처럼 실감하기 어려운 숫자들이 애드벌룬처럼 경기장 상공을 떠돈다.

인천 서구 청라 신도시. 일제히 기립한 초고층 아파트들이 당당한 ‘남근적’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이사이, 아직은 ‘개발’이 더 되어야만 하는 부지들이 웃자란 풀로 덮여 있었다.

청라 신도시를 가로지르는 개천, 아니 이곳 말로는 ‘운하’가 되는 ‘캐널’이 조성되어 있어 이 일대의 도로명이 ‘캐널웨이’다. 인천공항이 10여분 거리에 있으니 바야흐로 세계화에 걸맞은 작명이건대, 유학이나 비즈니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국 이름을 앞에 붙인 듯 어색하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오랜 기억이나 일상의 흔적은 찾기 어려운데, 그러나 이 같은 외관 조형이란 굳이 신도시가 아니라 해도 지금 이 나라 대도시의 모든 국면과 일치한다. 부산의 해운대구, 대구의 수성구, 광주의 상무지구, 서울의 용산구 등의 야경을 찍어서 청라 신도시의 밤 풍경이라 해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삶의 풍경의 획일화다.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의 모습. | 정윤수

‘경제유발효과’ 내세워 앞다퉈 대회 유치
이 신도시의 캐널웨이를 따라가면 2014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이 나타난다. 나는 지금 한창 공사 중인 주경기장의 야외공원에 앉아서 엄청난 규모로 완공을 앞두고 있는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다.

‘경제유발효과’라는 말이 있다. 대규모로 벌어지는 특정한 이벤트로 인하여 발생하는 생산·소득·고용 유발효과를 모두 합쳐 수치화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작성하는 ‘산업연관표’를 기준으로 한 ‘산업연관 분석’이 그 지표다.
그러나 이 프레임에 어떤 변수를 넣느냐에 따라 수치는 널뛰듯 한다. 2010년 G20 서울 정상회담의 경제유발효과는 무려 31조원이었다. 이로써 나라의 기운이 융성해진다 하여 ‘국격’ 운운하며 모든 사회적 갈등과 이의제기를 억눌렀던 일이 생각난다. 글쎄, 그 경제효과가 유발되었는지는 몰라도 이 사회의 신뢰 수준과 안전망이 현저히 추락했음은 피부로 느껴지는 일이다.

이 경제유발효과를 가장 많이 거론하는 분야는 대규모 스포츠 대회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그도 아니면 육상선수권대회, F1 그랑프리, 아시안게임 같은 세계 대회를 유치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이 신기루 같은 수치가 제시된다. 20세기에는 신생독립국이 자국의 정치적 위상과 경제개발을 위해 국제대회 유치에 앞장섰다.

21세기는 도시의 시대다. 개별 도시들이 중앙정부와 느슨하게 제휴하면서(혹은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큰 대회를 유치하려고 한다.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과정에서 국무총리 사인 등을 위조한 혐의로 파문을 일으켰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중앙정부가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지만, 개별 도시가 이렇게 독자적으로 큰 대회를 유치하려는 것은 낙후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차원도 있지만 때로는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욕망이 작동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스포츠 대회가 황금알을 낳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하계올림픽을 치른 몬트리올과 바르셀로나는 도산위기까지 갔고 동계올림픽을 치른 밴쿠버도 최소 5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낳았다.

청라 신도시에 흐르는 캐널웨이. | 정윤수

무수한 대회들 황금알은커녕 빚더미에
당장 전남 영암의 F1 그랑프리를 보자. 2006년 2월, F1 월드챔피언십 유치 계약 후 10년 가까이 흘렀다. 2010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네 차례 치러졌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은 연평균 총 5655억원의 경제유발효과가 있다고 했으며,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는 무려 5조8166억원이라고 했다.

과연 그러한가. 지금 이 대회는 전격 중단된 상태다. 재정여건이 취약한 전남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국제대회였음이 확인되었고, 국회와 중앙부처도 부정적으로 접근했다. 전남 경제의 사활을 건 사업이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지난 23일, F1 그랑프리 경기장을 방문한 이낙연 전남도지사 당선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이 거대한 난제를 마주했다.

이런 상황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확인된다. 준공한 지 2개월이 지났고 지난 1일에는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이 쿠웨이트와 평가전까지 치렀지만, 부실시공 문제가 크게 불거진 상태다. 곳곳이 공사판이다.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부랴부랴 밤샘 공사를 했다는 브라질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경기장의 핵심 시설인 육상 트랙은 경기 한 번 하지 않고 다시 뜯어내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인천지역 언론들은 부실시공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성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주경기장 관람석의 가변석은 상당히 위태롭고 수영장의 다이빙대는 국제 규격보다 짧게 시공되어 눈속임으로 급히 이어붙였다고 한다. 이 상태로는 9월 19일 개막 전에 각 경기장이 국제공인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안상수 전 인천시장의 무리한 사업 추진과 정치적 야망이 빚은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대외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인천 아시안게임의 총생산유발효과는 12조9328억원이며, 총부가가치 유발효과는 5조5575억원이고, 총고용 유발효과는 26만8500명이라고 한다. 좀처럼 실감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숫자들이 잔뜩 부풀어오른 애드벌룬처럼 청라의 주경기장 상공을 떠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