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발기찬 스파이더맨, 결국 백화점에서 철거된 사연은

한 달쯤 되는 것 같다. ‘롯데백화점의 패기’와 같은 제목으로 인터넷에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을 본 게. 롯데백화점 부산 광복점 옥상 전망대 공연장 외벽에 붙어 있는 작품이었다.

그때는 반짝 화제로 끝나는 줄 알았다. 6월 8일 일요일, 이 사진이 갑자기 화제로 떠올랐다. 인터넷 유머사이트 ‘오늘의 유머’에서 이 사진은 관심을 끌었다. 언론도 움직였다. ‘오늘의 유머’에서 이 사진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등록된 것은 6월 10일. 그리고 이튿날, 스파이더맨은 철거되었다.

궁금한 것은 많다. 롯데 측은 처음부터 저 ‘발기찬’ 거꾸로 매달린 스파이더맨을 용인했던 걸까. 작가의 제작 의도는? 논란의 와중에 작가가 제작 의도를 담은 해명 글을 올렸다. “아침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영웅에도 적용하여 거짓 없고 가식 없는 아침의 모습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은 백화점 벽면의 스파이더맨 작품 사진. 논란이 되자 백화점 측은 작품을 철거했다. | 오늘의유머

작가에 따르면 롯데 측에서 작품의 ‘특정 부분’에 대한 변형이나 철거를 요구했고, 변형을 받아들일 수 없어 철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글에서 “백화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 선정적으로 보여지는 작품이 설치된 게 (일부 사람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1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루 아침에 갑작스런 관심의 결과로 몇 시간 만에 철거하게 되니 씁쓸하다”고 밝혔다.

작가는 2009년 부산대 미대에서 석사를 마친 유은석씨다. 유 작가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지난해 8월 28일부터 설치된 작품이었다. 유씨는 이 스파이더맨 작품에 ‘발기남’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논란이 확산되자 롯데 측은 “부산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을 마련해주고 행사가 끝난 뒤 기증받은 것”이라며 “이후 의견이 분분하던 차에 고객 의견을 반영해 철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작가 유씨의 말에 따르면 롯데 측의 해명은 미묘하게 사실과 다르다. 롯데백화점과 벤타코리아라는 회사에서 진행한 콜라보레이션 전시에서 그의 포트폴리오를 본 행사 관계자에 의해 택해져서 작품이 전시되었다. 또 작품은 기증된 것이 아니라 롯데백화점 측에 의해 ‘장기임대’되어 전시되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요컨대, 작품의 선택과 전시에 백화점 측의 의지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었다는 설명이다. 나중에 기자와 통화한 롯데백화점 측도 “작가의 말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철거된 작품은 어떻게 되었을까. 전북 부안의 한 한의원이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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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철거된 유 작가의 사연은 SNS를 타고 선풍적인 관심을 모았다. 유 작가의 페이스북에는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가격을 문의하는’ 외국 인사의 글도 보인다. 유씨는 “사실 슈퍼히어로가 되기를 강요받는 현대인의 일상을 빗댄 연작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다”며 “스파이더맨 작품도 그 연장선에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스파이더맨의 원작자인 마블사에 저작권료를 지급했느냐는 비난이 많은데, 과거 팝아트 역사를 봐도 패러디에 저작권료를 물리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