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편, 대의민주주의의 손과 발

# 1948년 4월. 체신부는 총선 입후보자의 선거운동에 편의를 주기 위해 선거무료우편물을 취급하기로 하고 몇 가지를 당부한다. 우편물은 봉투가 없는 중량 20g 이내의 서장(書狀)이나 사제엽서라야 하고, 같은 군·읍·면 내에 배달할 것은 한번에 모아내도록 할 것 등등.

# 1956년 5월. 2주일 앞으로 박두한 정·부통령 선거전이 치열한 가운데 민주당과 자유당은 아직까지 우편물 선거운동을 안 하고 있다. 그러나 체신부는 두 당이 금명간 홍보물을 쏟아낼 것으로 보고 임시 배달부와 고용원들을 대기시켜 놓고 있다.

# 1991년 4월. 체신노조는 “3월 실시된 기초의원선거 때 8000여만통의 선거우편물이 폭주해 밤샘작업과 일요근무에 시달렸다.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6월 광역의원선거 때 선거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1995년 6월. 여대생들을 내세워 군인들에게 연서작전을 펴는 등 후보자마다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사신(私信) 공세를 펴고 있다. 한 후보가 많게는 5만통의 사신을 보낸 경우도 있다. 우체국마다 일손이 모자라 아우성이다.

밀려드는 지방선거 우편물을 분류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는 우체국 직원.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우편시스템과 집배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 경향신문 자료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만 바쁜 게 아니다. 치열한 선거홍보전 뒤에서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 선거홍보물을 배송해야 하는 우정사업본부, 우정청, 우체국 직원들과 집배원들이 그들이다. 홍보물 크기는 들쭉날쭉하고 사신까지 허용하던 시절, 산더미 같은 홍보물에 치여 우체국은 업무가 마비되고 집배원들은 어깨가 휘었다. 일부이긴 하지만 선거우편물 스트레스에 시달린 집배원이 수취인 주소를 지우고 배달을 빼먹는 일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체신노조가 나서 배달을 거부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을까.

우본은 오는 6월 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비상소통체제에 들어갔다. 선거우편물의 차질 없는 소통을 위해 지난 13일부터 23일간을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하고, 우본과 시·군 단위 우체국 등 전국 264곳에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선출인원은 3952명, 후보자만 1만여명에 달한다. 우편물 양은 투표안내문 2043만통, 거소투표 신청서 등 투표 관련 우편물 300만여통, 홍보물 1200만여통 등 3600만~3700만통에 이를 것으로 우본은 예상하고 있다. 이는 5회 지방선거 때의 4110만여통보다 소폭 줄어든 양이다. 우본 관계자는 “세월호 추모 분위기 속에서 후보자나 정당들이 홍보물 발송을 많이 자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선거우편물의 양이 다소 줄긴 했지만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보다 선출인수나 후보들이 많아 우편물 무게가 1㎏에 육박한다. 통상우편물보다 2~3배 무거운 우편물과 씨름해야 하는 집배원들에게는 여전히 ‘전쟁’이다.

선거우편물 소통의 의미는 단순히 우편물의 이동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의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거소자 투표가 대표적이다. 거소투표 대상자는 영내 또는 함정에서 생활하는 군인이나 경찰, 병원·요양소에 머물거나 수용소·교도소 등에 수용·수감된 사람,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어 거동할 수 없는 사람 등이다. 이들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우편투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거소투표는 신고부터 투표행위까지 거의 모든 과정이 우편으로 이뤄진다. 우편투표 덕분에 사각지대의 국민들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우정이야기 구독

최근 전자투표가 일부 도입되고 있지만 보안상의 우려와 정치적 합의의 어려움 등으로 전 국민 투표에는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우편투표는 앞으로도 투표소 투표가 어려운 유권자들의 참정권을 지켜주는 대안이 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작동케 하는 또 하나의 손과 발, 우체국과 집배원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겠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