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수술대 오른 캠퍼스 우체국

80년대 대학 캠퍼스, 월요일과 화요일만 되면 유난히 북적대는 곳이 있었다. 주초에 발행된 학보를 친구나 애인에게 보내려는 학생들이 앞다퉈 달려가던 곳, 바로 대학 구내 우체국이다. 학생들은 띠지에 짧은 편지를 쓰거나, 띠지 안쪽에 은밀한 사연들을 깨알같이 적어 보내곤 했다. 우체국 직원들은 이를 발송하느라 진땀을 뺐고, 수요일이나 목요일엔 다른 대학에서 날아온 학보를 돌리느라 바빴다.

추억과 낭만의 창구이자 부모님의 땀과 눈물을 환전하던 창구였던 대학 내 우체국의 역사는 꽤 길다. ‘196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고려·연세대학교 두 곳에 우체관서가 설치되어 교직원들과 학생 등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주게 됐다.’(동아일보 1998년 12월 16일자) 그 이후 114개 대학에 우체국이 들어섰다.

캠퍼스 우체국도 디지털 물결을 피할 순 없었다. 학보를 보내는 풍경이 낯설어질 즈음인 90년대 말부터 급속하게 쇠락했다. 급기야 우체국 통폐합의 1순위가 되었다. 우본의 ‘대학 구내 우체국 합리화’ 계획에 따라 7월 1일부터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다. 대학이 원할 경우 민간이 운영하는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되고 금융서비스는 자동화기기(ATM)로 대체된다. 1차로 100개 대학 우체국이 대상에 포함됐다. 상대적으로 우편 물량이 많아 이번에 빠진 14개 대학도 1~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우편취급국으로 바뀐다.

한 대학생이 취업원서를 우편으로 보내기 위해 대학 구내 우체국으로 가고 있다. 우본의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7월 1일부터 대학 내 우체국들이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되거나 폐지된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학 내 우체국이 수술대에 오른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방학기간이 길어 1년에 4~5개월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게다가 캠퍼스에 민간은행들이 들어오고 모바일뱅킹이 늘면서 우체국금융 수요가 크게 줄었다. “우편 물량이 계속 줄고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통폐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우본의 설명이다. 감사원도 지난해 우체국의 구조조정을 요구한 바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체국 밀도를 현 수준으로 유지할 때 개인고객의 이용자 편익은 817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관내국(집배신 업무는 하지 않고 창구업무만 하는 우체국)을 모두 없앨 경우에 들어가는 최대 유지비용 4006억(추정치)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개인고객 입장만 고려한다면 우체국을 감축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현재 우편물의 주 고객은 기업이다. 통상우편물의 85% 이상, 소포우편물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고객의 편익과 우체국 숫자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우편수익의 대부분을 올려주는 고객의 편익과 상관도 없는 우체국 유지 비용에 4000억 이상을 쓰는 것은 불합리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해마다 쌓이는 우편사업부문의 적자다. 2011년 439억, 2012년 707억, 2013년 24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우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보고서는 ‘모든 관내국의 폐지 등 극단적인 조치는 아니더라도 일부 우체국 통폐합 등 창구망의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때 마찰이 예상되므로 이의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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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서비스는 ‘평균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다. 많은 국가들이 우편사업자의 보편적 서비스 제공의무를 법령 등으로 규정하는 까닭이다. 보편적 사회서비스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이때 사업자가 정부와 사회 전반의 지원을 받으려면 시민들의 정서적 공감이 필수적이다. 대학 내 우체국이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되면 우편물 발송은 예전처럼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자 때문에 우체국이 사라지는 판에 누가 우편취급국을 하겠다고 나서겠느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 내 우체국 통폐합 작업이 이용자들의 이해와 공감을 얼마나 얻느냐에 따라 향후 전국 우체국망의 조정작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장정현 편집위원 jsal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