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찌라시 : 위험한 소문 - 미확인 저급 정보, 얼마에 살래?

“그때만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 입에서 나간 말 한마디 때문에 자기들 인생이 한 방에 훅 가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겠지.”

정보 교환을 위해 모인 속칭 ‘정보맨’들이 자기네들끼리 낄낄댄다. 정보 회의가 열리는 장소는 강남의 룸살롱이다. 찌라시란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통되는 정보지를 말한다. 정보화 사회에는 정보가 돈이다. 누가 먼저 어떤 정보를 습득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승패가 뒤바뀐다. 때로는 음지에서 유통되는 정보가 더 긴요할 때가 있다. 이른바 증권가 찌라시는 정보에 대한 욕구가 만든 괴물이다.

김광식 감독의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사설 정보지인 찌라시를 소재로 썼다. 찌라시엔 정치·경제계와 연예계의 뒷담화들이 주로 담긴다. 개인의 명예를 극히 훼손하는 내용도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이우곤(김강우 분)은 여배우 최미진의 매니저다. 자신을 믿고 따라온 최미진을 이우곤은 마침내 스타로 키운다. 하지만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대형 스캔들이 터진다. 최미진이 유력 정치인의 스폰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최미진은 자살한 채 발견되고 이우곤은 찌라시 최초 유포자를 찾아 복수에 나선다. 전직 기자 출신으로 찌라시를 만들어 배포하는 박 사장(정진영 분)을 만나지만 진짜 몸통은 따로 있다.

찌라시 내용들은 ‘아니면 말고’다.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내용들을 훔쳐본다는 관음증을 자극한다. 정보의 내용도 자극적이다. 정보를 극히 필요로 하는 집단 사이에는 찌라시 시장이 존재한다.

[영화 속 경제]찌라시 : 위험한 소문 - 미확인 저급 정보, 얼마에 살래?

찌라시의 구독 가격은 얼마일까? 찌라시의 시장가격은 없다. 내용이 은밀할수록, 파괴력이 큰 정보들이 많을수록 가격은 비싸진다. 영화 속에서 박 사장 직원은 말한다. “(저희 찌라시는) 정보 빠르기로 알아줘요. 구독료는 한 달에 50만원. 파일 열면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을 텐데, 비밀번호는 휴대폰으로 가요.” 한 달 50만원이면 연간 구독료는 600만원이다. 월 2만원이 되지 않는 신문 구독료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가격이다. 그럼에도 찌라시를 구입하는 이유는 공개되지 않는 정보를 얻는 대가로 그 정도는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불용의 가격’이 찌라시가 신문보다 높다는 얘기다. 지불용의 가격(WTP·Willingness to pay)이란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지불할 생각이 있는 최고 가격을 말한다. 생산자 입장에서라면 생산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가격이다. 그런데 통상 가격은 지불용의 가격 아래에서 형성이 된다. 소비자는 100만원짜리라고 생각하더라도 공급자가 100만원을 부르면 선뜻 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90만원이나 80만원을 부른다면 주머니를 열 가능성이 커진다. 왠지 10만원 혹은 20만원가량 이익을 봤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지불용의 가격에서 실제 구매 가격을 뺀 금액을 ‘소비자 잉여’라고 부른다. 소비자는 소비자 잉여가 클수록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비자 잉여가 마냥 커지기는 어렵다. 소비자 잉여가 커지는 만큼 생산자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판매된 가격에서 생산자가 팔고 싶어 하는 최대의 가격 차액은 ‘생산자 잉여’다. 완전히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소비자 잉여와 생산자 잉여를 합치면 최대가 된다.

영화 속 경제

최미진의 죽음에 ONC그룹이 관련돼 있다는 것을 눈치챈 박 사장이 ONC 측과 만나 딜에 나선다. 박 사장은 관련 내용을 찌라시에 쓰지 않는 대가로 찌라시 4부를 더 구독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퇴짜를 맞는다. 다시 2부 구독을 제시하지만 역시 거절당한다. ONC가 구독 요구를 거절한 것은 박 사장의 정보가 가치가 없거나 대기업의 힘을 이용해 루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혹은 3류 찌라시 업자로부터 협박을 당하는 것이 불쾌했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ONC는 찌라시를 막는 대가로 단 2부도 구독해줄 ‘지불용의’가 없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