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의 노동여지도]군산 젊은이들의 엇갈린 운명

현대중공업 용접공 하청노동자는 일을 주말까지 해도 연봉 3000만원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없다. 반면 타타대우상용차 최승원씨는 2006년 4월 이 회사의 사내하청 업체에 들어왔지만 2010년 정규직이 됐다.

전북 군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도 세월호 침몰 속보에 눈을 떼지 못한다. ‘전원 구조’ 자막에 가슴을 쓸어내리다 사망자 소식에 눈앞이 먹먹해진다. 조금씩 늘던 구조 숫자가 멈춰버린 여객선 터빈처럼 정지했다. 서울을 출발할 때 가라앉기 시작한 배가 군산에 닿자 뱃머리만 남았다. 군산의 하늘이 흐리다.

산업도로를 달려 부두가 가까워지자 두산, 한국지엠, 세아 등 대기업 공장들이 연이어 보인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웅장한 모습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나타났다. 자동차로 공장 한 바퀴를 도는 데 한참이다. 길이 끊어진 도로에 내려 공장 안을 본다. 작업복을 입고 헬멧을 쓴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1650톤, 아파트 40층 높이(115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골리앗 크레인과 도크를 안기에는 공장 담벼락이 턱없이 낮았다.

군산은 서해안의 울산을 꿈꾸었다. 1995년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을 중심으로 자동차·철강·기계 공장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다. 2007년 현대중공업이 지방정부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군산조선소를 짓기 시작하면서 군산의 꿈은 현실이 되는 듯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전경 / 경향신문

“현대중공업은 희망이 없다”
2014년 군산은 1000만평의 국가산업단지에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두산과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1000여개의 기업이 들어서 3만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500만평이 넘는 새만금산업단지 조성으로 일자리가 더욱 늘어난단다. 전북지역 제조업 종사자의 28%가 군산에서 일한다. 115년 전 일제가 호남평야의 쌀을 실어가던 가난한 항구도시가 부유한 노동자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일까?

2008년 5월 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기공식에 참석했다. 전라북도와 군산시가 현대중공업을 유치하기 위해 회사를 60번이나 찾아갔다는 ‘60고초려’ 사례를 예로 들었다.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기업 투자 유치 노력을 칭찬했다. 정부는 ‘조선산업 서해안시대’라고 불렀다.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각각 100억원씩 모두 200억원의 특별지원금을 현대중공업에 갖다 줬다. 조선소 부지 한가운데에 있던 열십자(十) 모양의 도로를 없앴고, 도크를 위해 해안 순환도로를 폐쇄해주는 특혜까지 줬다. 현대중공업은 “신규 일자리만 1만1000여개가 생기고 협력사 직원까지 합한 연간 인건비가 5000억원에 달한다”고 화답했다.

지방정부와 현대중공업이 양해각서를 체결한 지 9년, 일자리는 어떻게 됐을까. 새로 들어선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집행부가 군산공장을 찾았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3700명의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은 499명뿐, 3200명은 사내하청이었다. 비정규직 비율이 86.51%였다. 울산에서 파견 나온 정규직을 제외하면 군산지역에서 뽑은 정규직 숫자는 더 줄어든다.

참다 못해 군산시의회가 나섰다. 특별결의문을 발표하고, 회사를 방문해 울산공장 수준으로라도 정규직을 채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동완 군산시의원은 “현대중공업을 소유한 정몽준 의원의 출판기념회를 찾아가 1인 시위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렵게 수소문해 군산 시내에서 만난 용접공 하청노동자는 “군산 젊은이들에게 현대중공업은 희망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위험하고 힘든 ‘땜쟁이’ 일을 주말까지 해도 연봉 3000만원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가깝게 일했던 젊은 친구가 정기검진을 했는데 폐섬유종 판정을 받았다. 산재 신청은커녕 그냥 회사를 그만뒀다. 매주 군산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노동상담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군산시지부 김락균 부지부장은 “처음에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젊은이들이 현대중공업으로 몰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떠나가 이제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조선산업 서해안시대를 열었다는 군산조선소는 비정규직 양성소가 되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 주식만으로 지난 한 해 배당금 346억원을 포함해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고,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나섰다.

구 민주당이 장기 집권한 군산시는 산업단지 내에 빌라 18가구를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자체 차원에서 전세버스 15대를 무료 통근버스로 제공한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돈을 퍼붓는데, 군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기술을 배운 젊은이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다. 자동차·기계·조선에 이어 신재생 에너지와 첨단 소재산업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신산업의 전람회장이라고 홍보하는 군산에서 청년들의 꿈을 키울 안정된 일자리는 찾기 힘들다. 대기업·중소기업 어디에서도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휴직 중인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1100명은 당장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성과급 대신 선택한 후배들의 정규직
중대형 트럭을 만드는 타타대우상용차 정문에서 노동조합 사무실을 방문한다고 하니 반갑게 안내한다. 대우그룹 해체 후 법정관리를 거쳐 인도의 타타그룹에 매각된 이 회사는 2003년부터 생산량이 급증하자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거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하청노동자가 정규직보다 더 많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목표로 정한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2003년 노사교섭을 통해 25명 정규직화에 합의했고, 매년 30~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2008년 노조 규약을 바꿔 사내하청 노동자 321명 모두를 노조에 가입시켰다. 올해 4월 1일부로 5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이제 비정규직은 140명만 남았다. 차덕현 지회장은 “2년 후에는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타타대우상용차 노조 사무실이 활기차다. 30대 젊은 청년들이다. 최승원씨(34)는 지금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군산고등학교와 전문대를 졸업하고 호텔과 자동차 정비소를 거쳐 2006년 4월 이 회사의 사내하청 업체에 들어왔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지인의 소개 때문이었다. 승원씨는 2010년 정규직이 됐다. 지금 연봉은 6000만원. 병원비나 학자금을 포함하면 더 많다. 무엇보다 마음 편하게 출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주변에서 모두들 부러워한다. 선배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했다면 그의 희망도 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동조합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였던 그의 동창은 6개월 만에 그만뒀다.

“회사에 처음 사내하청으로 들어왔을 때 많이 힘들었지만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잘못했으면 현대중공업에 갈 수도 있었잖아요. 군산시도 아닌 전국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IMF사태 이전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선배들은 현대자동차 정규직처럼 2000만원이 넘는 성과급을 챙길 수 있었다. 대신 현장의 후배들을 다 정규직으로 만든 것 아니냐며 흐뭇해한다. 그걸 감수했기 때문에 회사도 노동조합을 무시하지 못한다.

박점규의 노동여지도

대기업 현대중공업과 중소기업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일하는 청춘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렸다. 희망이 사라진 일터, 하청노동자들의 한숨소리가 깊어가는 군산을 떠난다. 그럼 정규직 일자리는 안녕할까? 통신 대기업 KT에서 1만명을 구조조정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5년 전 어버이날 정리해고 통보서를 보낸 쌍용차가 떠올랐다. 평택행 기차표를 끊어야겠다.

<박점규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